6일 호주 래퍼 더 키드 라로이의 공연이 열린 서울 화곡동 KBS아레나는 흡사 군 부대 같았다. 굵고 낮은 함성이 장내를 메웠다. 20·30대 여성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 공연계를 생각하면 이례적인 풍경이었다. 우렁차게 “섹시, 라로이” “소 핫!”을 외치는 남성 관객들의 애정에 더 키드 라로이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것만 알아주세요. 오늘 밤 이 공연장에 모인 우리 모두는 한 가족이에요. 물론 저도 포함해서요.”
2003년생인 더 키드 라로이는 팝계에서 Z세대 슈퍼스타로 통한다. 노래와 랩이 섞인 감성적인 힙합 음악으로 청년들 마음을 건드려서다. 그가 팝스타 저스틴 비버와 함께 발표한 노래 ‘스테이’(STAY)는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뿐 아니라 한국 음원 차트에서도 수개월 간 정상을 지켰다. 이날 라이브로 들은 더 키드 라로이의 음악은 청춘을 쏙 빼 닮았다. 때론 뜨겁고 때론 수줍었다. 패기도 그리움도 솔직하고 생생했다.
“안녕하세요.” 첫 곡으로 자신의 이름을 처음 널리 알린 노래 ‘렛 허 고’(Let Her Go)를 부른 더 키드 라로이는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비속어 섞인 랩을 거칠게 내뱉던 래퍼는 어느새 예의바른 19세 소년으로 돌아왔다. “제 이름은 더 키드 라로이고, 한국에서 공연하는 건 처음이에요. 여러분을 보니 흥분되네요. 다음 곡에선 함께 뛰어 줄래요?” 더 키드 라로이가 이렇게 주문하자 객석은 금세 요동쳤다. 더 키드 라로이의 금색 곱슬머리도 함께 출렁거렸다. 그는 ‘디바’(Diva), ‘세임 에너지’(Same Energy), ‘텔 미 와이’(Tell Me Why) 등을 부르며 단숨에 끓는점을 향해 내달렸다.
3000석 규모의 공연장은 더 키드 라로이에게 좁아 보였다. 그는 무대 양옆을 오가는 걸로 모자라 객석 아래로 내려갔다가 드럼 위로 올라갔다. 한 여성 팬이 직접 만든 자신 얼굴이 합성된 태극기를 받아들고 기뻐하기도 했다. 젊은 피는 잠시도 식을 줄 몰랐다. 공연 시작 10여분 만에 겉옷을 벗어던지더니 겅중겅중 발을 구르며 흥을 돋웠다. 함께 무대에 오른 밴드 멤버들은 아예 윗옷을 입지 않은 채 드럼을 두드리고 기타를 튕겼다.
관객들도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키드 라로이가 미발표곡 ‘왓 저스트 해픈드’(What Just Happened)를 부르며 “세계 각 지역 관객들 중 누가 제일 잘 따라 부르는지 경쟁을 붙이고 있다. 지금까진 LA(로스앤젤레스)가 1등”이라고 하자, 관객들은 질 수 없다는 듯 목청을 높였다. 처음 듣는 노래를 즉석에서 따라 부르는 모습이 영락없는 ‘떼창의 민족’이었다. 반응이 워낙 뜨거워서였을까. 더 키드 라로이는 계획에 없던 노래도 두 곡 불렀다. 한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요청한 ‘론리 앤 퍽 업’(Lonley And Fxcked Up)과 앙코르곡 ‘파리스 투 도쿄’(Paris To Tokyo)였다. 관객들은 환호성과 합창, 춤으로 화답했다.
더 키드 라로이는 누구보다 극적인 삶을 살았다. 호주 원주민의 피를 이어받은 그는 부모님의 별거와 이혼으로 순탄치 않은 유년기를 보냈다. 아버지 노릇을 하던 삼촌은 살해당한 뒤,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마약을 팔았을 정도로 형편은 곤궁했다.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린 노래가 음반사 관계자 귀에 들어가 정식 데뷔한 후에도 시련은 끊이지 않았다. 음악 스승인 래퍼 주스 월드를 잃는 비애를 겪었다. 그러나 더 키드 라로이는 좌절하지 않았다. 먼저 떠난 이들의 가르침을 유산으로 물려받아 음악으로 토해냈다.
‘꼬마’(kid)라는 예명에도 더 키드 라로이가 거대하게 느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쥬스월드와 함께 만든 노래 ‘고’(GO)를 부르자, 관객들은 그의 마음을 안다는 듯 “롱 리브 주스”(Long live Juice·주스 월드 영원하리)라고 입모아 외쳤다.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제이홉과 세븐틴 멤버 버논 등도 공연장을 찾아 흥을 만끽했다. 앞서 하이브가 이타카 홀딩스를 인수하면서 이들은 소속사 식구가 됐다. 더 키드 라로이는 “서울에 처음 왔는데 나를 환대해줘서 고맙다”며 “다시 이곳에 돌아올 날을 고대하겠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