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폐지한다고 지지율 안 올라간다.”
여성들이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외친 구호다.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를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지난 11일 ‘지지율 20%는 여가부 폐지 정책의 결과다’ ‘구조적 성차별에 기름 붓는 윤석열 규탄한다’ ‘시대착오적인 혐오정치를 끝내자’는 내용의 피켓들을 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가부 폐지안이 담긴 정부조직개편안을 확정했다. 보건복지부 차관급 부서인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해 여가부의 주요 기능을 대신한다는 계획이다. 경력단절 여성에게 취업 지원서비스를 제공하던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는 고용노동부와 여가부가 공동으로 운영한다.
여성단체들은 이를 두고 윤석열 정부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여가부 폐지를 위한 칼을 빼들었다고 의심했다. 공동행동은 “윤 정부는 정치적 위기 때마다 일부 여성혐오 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한 방안으로 여가부 폐지를 의제로 부상시키는 여성혐오 정치를 벌이고 있다”며 “이는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국면전환용 카드로, 무책임 정치”라고 꼬집었다.
정의당도 지지율 반등을 위한 정치적 속셈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는 11일 “윤 정부의 ‘여가부 폐지 특수’ 시도는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대선 당시 지지율 하락세에 자구책으로 꺼내든 것이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 공약이었다”며 “올해 7월에도 국정 지지율이 30%대로 폭락하자 윤 대통령은 어김 없이 여가부 폐지 로드맵 마련을 지시했고 국정 지지율이 20%대로 내려앉은 지금 또한 마찬가지”라고 질타했다.
공식 면담 한 번 없이… 이대남 겨냥 7글자 공약 실현 ‘고삐’
정부는 윤 대통령의 지시 아래 ‘여가부 폐지’를 위한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지난 6월16일 취임 후 첫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만 해도 “구체적 논의는 아직이며, 개편 시기와 관련한 타임라인을 정하지 않고 의견을 충분히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가부 첫 업무보고에서도 폐지안은 빠져있었다. 김 장관은 지난 7월25일 사전 브리핑에서 “이번 업무보고는 국정과제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여가부 폐지와 관련한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면서 “대통령과도 관련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보고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여가부 폐지를 꼭 집어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김 장관에게 별도 추가지시 형태로 ‘여가부 폐지’ 로드맵을 조속히 내놓으라고 주문했다.
이후 74일 뒤인 지난 6일 행안부가 정부조직개편안을 공식 확정하며, 국회 동의만을 남겨놓은 상태다. 정부와 여당은 11월 정기국회에서 정부조직 개편안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부처 폐지에만 속도를 내느라 그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조직 개편 주무부처인 행안부와 여가부의 제대로 된 공식 소통 기록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실이 최근 여가부에 정부조직 개편안 마련 과정에서 행안부와의 협의·소통 실적을 묻자 여가부는 “유선 통화, 면담 등으로 수시 협의했으며, 공식 면담이 아니므로 기록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행안부 장관이나 담당자들과 충분히 소통했다(6일)”는 김 장관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양이 의원은 “인사와 조직을 총괄하는 행안부와 제대로 된 협의 과정이 없었다는 것은 여가부 폐지를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하고 있었는지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며 “또 국무조정실과 협의가 없었다는 것은 여가부 기능 강화는 실제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당초 여가부 폐지는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이대남(20대 남성)’ 지지율을 견인하기 위해 내놓은 공약이었다.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는 지난 1월7일 “여성가족부 폐지”, 단 일곱 글자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해당 공약은 이대남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윤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먼저 제안했던 ‘인구가족부’로 확대‧개편하는 방안은 없던 일이 됐다.
야당·여성단체 거센 반발… 조직개편안 통과 불투명
정부가 여가부 폐지를 위한 고삐를 당기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야당과 여성단체의 반발이 거센 탓이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여가부를 폐지하고 복지부 내 차관부서로 격하하는 것에 대해 지난 대선부터 (민주당은) 일관되게 반대해왔다”며 “성차별 해소를 위한 조직을 독립 부처로 운영하라는 건 유엔(UN) 차원의 권고로 세계적 추세이므로 정반대로 가는 것은 우리 당이 동의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확대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의장은 “여가부가 인구나 청소년 정책을 포함하고, 성차별이 세대에 따라서 차이가 나고 있어 ‘성평등가족부’ 등 기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정부 ‘발목 잡기’로 비치는 것을 우려한 듯 “지금이 조직개편을 공론화할 시기로는 적절치 않다고 본다”면서 “경제 민생이 심각하고 안보 상황이 엄중한 시기이므로 그에 대처하는 것이 시급하지, 정부조직법으로 정쟁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여가부를 폐지하기 위해선 민주당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려면 우선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국회의원 300석 중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이 180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소야대 상황이라 정부여당의 의지만으론 법 개정이 어렵다.
여당은 민주당의 반대를 ‘정쟁’이라고 규정하며 압박하고 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같은 날 국감대책회의에서 “정부조직 개편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서 민주당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무조건적 정쟁을 위한 반대는 국민들이 엄중히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면서 “이번 개편안은 여성가족부 기능에 폐지나 축소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비효율적으로 기능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조직을 리셋하고 재정립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여성단체는 여가부 폐지가 오히려 ‘기능 강화’라는 대통령실의 입장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오는 15일부터 서울 종로구 종각역 앞에서 여가부 폐지 관련 규탄 집회를 지속적으로 열 것이라고 선포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대표는 “(지지율 반등을 위해 여가부 폐지를 꺼내들었다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아예 없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여당의 설명처럼 여가부 기능이 강화되려면 예산이나 인력이 증가해야 하는데,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부처가 격하됐다. 기능 강화를 얘기하려면 (복지부 뿐 아니라) 다른 부처 내에도 젠더정책 총괄 부처가 생겨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여성 고용 관련 업무가 고용노동부에 이관되는 것에 대해서도 “고용노동부는 성인지 관점에서 정책을 수행해본 적이 없다”며 “노동은 성별 등 여러 가지가 얽혀있는데 기존에 하던 걸 하는 것 이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