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격 사건으로 불거진 자민당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유착 의혹 등으로 급격한 지지율 하락세를 맞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종교법인법에 따라 옛 통일교를 상대로 조사를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결과에 따라 해산명령 청구로 이어질 수 있다.
17일 교도·NHK·마이니치·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이날 도쿄 총리 관저에서 나가오카 게이코 문부과학상에게 종교법인법에 규정된 질문권을 행사하라고 지시했다.
종교법인법의 질문권은 불법행위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관계부처 등이 교단에 업무나 관리 운영에 대해 질문하고 보고 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해산명령 청구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규정으로, 지금까지 종교단체를 상대로 활용한 전례는 없다.
기시다 총리는 다수의 자민당 의원이 옛 통일교와 접점을 가진 것과 관련해 “국민의 정치 신뢰를 손상했다.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구제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점을 정부로서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옛 통일교와 관계가 있지 않은 제가 책임지고 미래를 향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는 또한 이날 중의원 예산 위원회에서 통일교의 고액 헌급이나 영감상법(악령을 제거할 수 있다며 평범한 물건을 고가에 판매하는 방법) 피해자 구제 등을 위해 소비자 계약법 등을 개정해 계약의 취소권 대상을 확대하는 것 외에도 취소권 행사기간 연장을 검토하겠다고 표명했다. 또한 신자인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방지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관계 관료들에 대응을 지시했다.
이번 조치는 기시다 총리가 이끄는 내각 지지율 반전을 노린 대응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집권 자민당과 옛 통일교의 유착 의혹 등으로 지지율이 추락하는 가운데 통일교 문제에 정면으로 마주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정권에 대한 비판을 피하려는 목적이 있어 보인다고 마이니치신문은 보도했다.
앞서 아베 전 총리를 저격한 야마가미 용의자가 ‘어머니가 통일교에 거액을 기부해 가정이 파탄났다’고 범행 이유를 밝힌 이후 아베 전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과 옛 통일교의 정치권 유착 의혹이 불거졌다. 여기에 일반인 관련 피해 신고도 급증하면서 국민적 비판 여론이 높아졌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정부가 마련한 합동전화 상담 창구에는 금전 문제나 정신건강 등에 관한 상담이 지난달 30일 기준 1700건 이상 접수됐다.
일본 정부는 그간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는 점을 들어 종교 해산 요구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자민당과 옛 통일교 유착 의혹, 아베 전 총리 국장 등으로 기시다 정부의 지지율이 지난해 10월 내각 출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은 상황이다.
이날 보수 우익성향의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FNN(후지뉴스네트워크)과 15~16일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 결과, 직전 조사(9월 17~18일)보다 1.4%p 감소한 40.9%로 나타났다. 5개월 연속 하락으로 작년 10월 정권 출범 이후 최저치다. 기시다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직전 조사 대비 1.9%p 증가한 51.9%로 2개월 연속 긍정 지지율을 웃돌았다.
기시다 총리의 통일교 문제 대응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7.27%에 달했고, 긍정적인 평가는 17.5%에 그쳤다.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 하락세는 또 다른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지난 14일 지지통신 발표한 여론조사(7~10일 실시)에서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직전 조사 대비 4.9%p 하락한 27.4%로 내각 출범 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이보다 앞선 지난달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는 지지율이 29% 나타나 처음 20%대 벽이 깨졌다.
NHK가 지난 8~1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기시다 내각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직전 조사보다 2.0%p 내린 38.0%로 나타났고,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3.0%p 상승한 43.0%로 내각 출범 이후 처음으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정조회장은 이날 중의원 예산위에서 “나를 포함해 자민당 의원의 관여가 결과적으로 (통일교) 교단의 신용을 높이는데 기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한다”고 사과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