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보험사의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를 허용한 것을 두고 의료민영화 논란이 불붙고 있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12개에 대해 시범 인증을 부여하기로 했다. 시범 인증 사업은 1군 만성질환관리형, 2군 생활습관개선형, 3군 건강정보제공형으로 나뉜다.
복지부는 12개 업체의 건강관리서비스를 허용했는데, 이중에는 대기업 보험사도 포함됐다. S-헬스케어의 경우 삼성생명의 당뇨 보험에 가입한 고객을 대상으로 당뇨 질환 관리를 위해 혈당·복약·혈압·체중 데이터 등을 전송 및 관리하고 분석해준다. 걷기 등 건강활동 관리, 복약 알림 등 질환 관리를 지원한다.
KB손해보험의 자회사 KB헬스케어의 통합건강관리 플랫폼 ‘오케어(O’Care)’도 최종 시범 인증을 받았다. 건강피트니스와 심리검사·상담 등 개인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본인인증 시 최대 10년간 건강검진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의료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리기업의 의료행위를 합법화한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우선 해당 건강관리서비스가 ‘비의료 행위’라는 복지부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의료행위와 비의료행위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탓에 일부 보험사에선 헬스케어 사업 확장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었다. 당초 의료법상 보험사가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건강검진 데이터를 분석해 진단을 내려도 이를 의료행위로 간주하면 불법이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만성질환은 관리가 곧 치료이다. ‘비의료 건강관리’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진단과 치료 뿐 아니라 건강증진, 질병예방, 질병악화방지 등을 일차보건의료의 일부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비 증가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이들은 “민영보험이 활성화되면 의료비는 증가하지, 줄지 않을 것이다. 민영보험사는 오히려 수집한 개인정보를 보험료 인상이나 보험금 지급거절 등에 활용할 것”이라며 “정부가 대다수 노동자 서민들의 삶을 팍팍하게 하며 기업주들의 이윤만 보장해주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제도적인 절차를 무시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동안 만성질환자의 치료를 위한 건강관리 서비스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다.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허용했다. 그러나 지난달 정부는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및 사례집’을 개정해 그동안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던 만성질환자 대상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를 의료인이 의뢰한 경우를 전제로 해 대폭 허용했다.
이전에도 기업의 ‘건강관리서비스’를 허용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다. 2010년, 2011년 두 차례 국회에서 ‘건강관리서비스법’으로 국회에서 입법이 시도됐으나 의료민영화 논란으로 무산된 바 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의료행위를 기업에 넘겨주기 위해선 사실 법 개정을 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인데, 의료민영화 논란으로 추진이 어려우니 ‘가이드라인’ 개정이라는 꼼수를 쓴 것”이라며 “법적인 정당성이 없다”고 질타했다.
이어 “민간기업의 건강관리서비스 제공 허용은 의료민영화의 첫발”이라며 “이대로 추진할 경우 의료 시장화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