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이 경색된 것을 두고 기준금리 인상의 부작용이 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리 인상으로 기초 체력이 떨어진 채권시장이 레고랜드 사태로 문제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이는 향후 기준금리 인상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22일 금융투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국고채 3년물 금리(최종 호가, 20일 기준)는 4.35%로 연초 1.855% 대비 2.49%p 올랐다. 같은 기간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2.325%→4.439%, 한전채 3년물, 2.184%→5.673%, 산금채 1년물 1.669%→4.532%, 회사채(무보증 3년, AA-) 2.46%→5.588%로 상승했다.
채권 금리 상승(채권 가격 하락)은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채권 시장에 유동성이 부족해진 영향이 크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에 발맞춰 한국은행이 자본유출을 예방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서 그동안 채권 시장에서는 유동성이 빠르게 말라가는 조짐을 보여 왔다.
지난달 수요예측에 나선 메리츠금융지주(AA급)와 SK리츠(AA-급)는 모집 물량을 채우지 못했다. 여기에 콘텐트리중앙(BBB급), 삼척블루파워(A+급), SK렌터카(A급) 등의 수요예측에서도 미매각 사태가 벌어졌다. 금투협에 따르면 올해 회사채 순발행액은 1분기 7조4491억원에서 2분기 8831억원, 3분기 2877억원으로 급감했다. 4분기에 들어서는 순상환으로 전환한 상태다.
레고랜드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는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에 빠진 회사채 시장의 투자 불안을 촉발시킨 방아쇠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준금리 인상이 불러온 투자심리 위축으로 채권 시장에 돈이 돌지 않은 상황에서 부도사태가 발생하자 자금 경색이 심화됐다는 평가다.
사태 수습에 나선 정부의 대응 역시 결국 유동성 공급에 무게가 실려 있다. 정부는 20일 회사채 시장의 안정을 위해 1조6000억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화펀드’(채안펀드)를 다시 가동하고, 추가 캐피탈콜(요청시 자금 지원) 실시도 즉각 준비하기로 했다. 채안펀드는 채권시장이 막히면서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않을 때 금융기관 등이 기업의 유동성과 자금 조달을 위해 만든 펀드를 말한다.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상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금리 인상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한국은행이 합리적 기준금리 상단으로 본 3.5% 이상으로 금리를 올리는데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기준금리를 3.0%로 올린 한은은 내달 11일 기준금리 조정에 다시 나선다.
채권 시장 관계자는 “정부의 이번 대응은 자본시장에 다시 돈을 푸는 방식”이라며 “이는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종료 시점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해석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정부의 뒤늦은 대응이 이번 채권 시장의 자금 경색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유동성 부족으로 1~2달 전부터 채권 시장이 불안 조짐을 보였지만 당국의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다.
채권 시장 관계자는 “채권 시장의 불안 조짐은 1~2달 전부터 본격화됐다”며 “당국이 모니터링을 잘하고 있었다면 지금과 같이 시장이 흔들리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권시장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추가 대책과 함께 결국 금리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