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서 원룸까지 4년…서울집, 너 뭐 돼? [마지못해,상경④]

반지하서 원룸까지 4년…서울집, 너 뭐 돼? [마지못해,상경④]

기사승인 2022-12-19 06:01:01
상경 청년 대다수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사는 ‘렌트푸어’다. 렌트푸어는 소득의 대부분을 집값으로 지출하는 이들을 뜻한다. 주거의 질도 나쁘다. 청년 1인 가구 중 7.5%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한다.   사진=박효상 기자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에는 사면초가에 빠진 오디세우스 이야기가 나온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항로에서 괴물 스킬라와 소용돌이 카리브디스 중 하나를 골라 맞서야 했다. 괴물은 부하를, 소용돌이는 배를 잃는 위험이 있었다. 나아가려면 선택해야 했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괴물과 싸웠고 부하 여섯을 잃었다. 그는 후회했을까, 문제에 정답은 있었을까.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이 만난 지방 청년은 모두 한 명의 오디세우스였다. 서울로 갈 수도 고향에 남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 인생.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일자리, 집, 생활비, 외로움의 고통이 따라왔다. 땅 위에서 부유하는 지방 청년들. 고향에 남은 이의 이야기는 [마지못해, 상경] 홀수 편에, 상경한 이의 목소리는 짝수 편에 담았다.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한 지방 청년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편집자주]
빛 없는 반지하를 탈출하는 데 꼬박 4년이 걸렸다. 지난 2018년 전남 해남에서 상경한 최석진(27·가명)씨의 이야기다. 영상 편집자를 꿈꾸던 스물셋, 최씨는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다. 첫 자취방은 관악구 신림동의 12㎡(4평) 반지하.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6만원짜리 방이었다. 지상에서 살려면 9만원이 더 필요했다. 살아남으려면 한 푼이 아까웠다.
서울 마포구 공덕역 근처에 있는 13㎡(4평)반지하방. 고시원에서 살던 상경 청년이 보증금 500만원을 모아 겨우 마련한 보금자리다. 통풍이 잘 되지 않아 퀴퀴한 곰팡내가 가시지 않았다. 

서울에 살려면 대가를 치러야 했다. 최씨는 “포기하는 법을 배웠던 시간”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매연이 들이닥쳐 현관문을 열 수 없었다. 향초를 피워도 퀴퀴한 냄새가 났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면 곰팡이가 보였다. 바닥에는 벌레가 기어 다녔다. 창밖으로는 자동차 바퀴와 사람들 정강이가 보였다. 겨울에는 방에서도 패딩을 껴입었다. 하얀 입김이 보였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한 5평 원룸. 전북 남원 출생인 박모(29)씨가 지난 2019년부터 2년간 살았다. 이사오기 전부터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장마철마다 천장에서 비가 새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좁고 어두운 방에서 최씨는 점점 우울해졌다. 떠날 수 없었다. 월급 230만원으로 보증금을 마련하기 역부족이었다. 그는 지난 8월에야 볕 드는 20㎡(6평) 원룸으로 이사했다. 4년간 꼬박 모아온 돈과 햇빛을 맞바꿨다. “햇빛이 방안에 들어오니 살 것 같아요. 이제 환기가 되니 음식도 해먹을 수 있겠네요”
광주에서 올라온 한 상경 청년이 9개월 동안 지냈던 서울 종로구의 고시원. 3.3㎡(1평) 남짓한 크기지만 월세는 55만원에 달했다. 좁고 손바닥만한 창 탓에 빛이 거의 들지 않았다. 방음에도 취약해 날마다 옆 방에서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2019년 상경한 해남 출신 김나은(여·24·가명)씨. 마포구 3.3㎡(1평) 고시원에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보증금 300만원, 월세 15만원. 인근에서 가장 저렴한 방이었다. 가격과 환경은 반비례했다. “간단한 짐만 갖고 왔는데도 누울 자리가 없었어요. 누우면 화장실 문이 발끝에 닿아서 관에 들어간 기분이었죠” 석 달을 버티기 힘들었다. 서울에서의 두 번째 보금자리는 종로구 삼청동의 20㎡(6평) 남짓한 원룸이었다. 가파른 언덕 꼭대기 집. 월세는 75만원에 달했다. 홀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룸메이트를 구해야 했다. 총 3명이 월세를 나눠 냈다. 다 같이 누우면 방이 꽉 찼다. 모서리에 붙어 새우잠을 잤다.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 청년 예술인 홍승희씨가 ‘종이박스 집’을 세웠다. 우리나라 청년 주거빈곤 문제를 풍자했다.   사진=박효상 기자 

상경 청년 대다수는 ‘렌트푸어’다. 렌트푸어는 소득의 대부분을 집값으로 지출하는 이들을 뜻한다. 김씨는 이 시기 아르바이트로 번 돈 3분의 2를 주거비로 썼다. 지난해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청년 1인 가구 10명 중 3명은 주거비 과부담 가구다. 월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이 30%를 초과한다. 주거의 질도 나쁘다. 청년 1인 가구 중 7.5%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한다. 청년 1인당 평균 주거 면적은 30.9㎡(9.3평)다. 전체 1인 가구 평균(33.9㎡)에 못 미친다.

상경 4년 차에 접어든 김씨는 여전히 월세살이 중이다. 좁은 자취방은 휴식처라는 느낌보다 박탈감을 안겨주는 장소가 됐다. 내 집 마련의 꿈은 꿔본 적도 없다.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이요? 넘볼 수 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아요. 서울 출신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 아닐까요”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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