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국민연금을 위해 월 납입 보험료율을 10년 내 최소 15%에서 22%까지 올려야 한다는 국책연구기관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현재 9%의 두 배가 넘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달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를 위한 공적연금 제도개혁 방안 모색’ 보고서를 국회 입법조사처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현재 보험료율을 유지하면 국민연금 재정이 오는 2040년부터 적자로 돌아서는 것으로 예측했다. 보사연은 두 가지 안을 제시했는데 첫번째는 보험료율을 내년부터 5년 동안 매년 2.578%P를 인상해 2028년까지 21.89%로 올리는 안이다. 두번째는 10년 동안 매년 1.363%P를 인상해 2033년까지 22.63%로 올리는 안이다.지난해 12월 국민연금 전문가포럼에서 제시된 방안보다도 인상폭이 높다. 당시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방안 발제를 맡은 유호선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료율을 15%까지 점진적으로 인상하면 4차 재정계산에서 2057년으로 예상된 기금소진 시점을 최대 2073년까지 늦출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은 50년 후 적립배율 1배를 목표로 분석했고 보사연 보고서는 70년 후 적립배율 2배를 목표로 했다. 적립배율 2배는 가입자에게 2년 동안 보험료를 걷지 않아도 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 재정 수준을 말한다. 또 보사연 보고서에는 기대수명이 늘어나면 자동으로 지급되는 연금을 깎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자는 내용도 함께 담겼다.
연금 개혁 먼저 이뤄낸 국가들…정치적 결단·투명성 강조
결국 관건은 사회적 합의다. 지금보다 2배가 넘게 보험료율을 납부할 필요성을 국민에게 납득시키고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한국의 국민연금 보험료율 9%는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은 18.2%.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 논의는 과거부터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현행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1998년 1차 연금개혁 이후 24년째 그대로다.
연금 개혁을 단행한 다른 국가는 어떻게 국민 저항을 극복했을까. 일본은 지난 2004년 13.58%인 보험료율을 18.3%로 올렸다. 인상폭은 컸지만 매년 0.354%P씩 점진적으로 올려 18.3%에 도달하기까지 13년이 걸렸다. 연금 개혁을 주도했던 겐조 요시카즈 게이오대 상학부 교수는 지난달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과 만나 연금은 낸 금액대로 돌려받는 적금이 아니라 보험이라는 점을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지도자의 정치적 결단도 강조했다. 지지층을 잃을 수 있다는 위험에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과감히 연금개혁을 밀어붙였기에 별 탈 없이 개혁이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캐나다는 투명한 정보 공개와 국민 합의를 연금 개혁이 잘 자리잡은 배경으로 꼽았다. 캐나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적 연금(CPP)을 운용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셸 몽탐보 캐나다 수석재정추계관실(OCA) 이사는 지난해 11월3일 서울에서 열린 ‘2022 공적연금 국제 콘퍼런스’에서 “1997년 연금개혁을 앞두고 젊은 세대는 보험료율은 증가하는데 자신이 연금을 받을 나이가 됐을 때 연금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판단하게 됐다”고 발언했다. 캐나다도 한국과 마찬가지 상황에 직면했던 셈이다.
몽탐보 이사는 “1996년 전국적인 협의가 이뤄졌고 대중들도 CPP를 유지하면 좋겠다고 합의했다”면서 “1997년 개혁에서 얻은 교훈은 우리가 공적으로(정치적 대화) 얘기를 나눴고 연금재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최대한 모든 정보를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국민 직접 참여”…전문가 “젊은층 동의·참여가 연금개혁 동력”
정부는 연금개혁 과정에 국민이 직접 참여하도록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9일 연합뉴스TV에 출연해 연금개혁 과정에서 국민 설득 방안에 대해 질문 받자 “우선 관련 정보와 통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면서 “청년, 어르신, 근로자, 기업, 지역가입자별 심층면접을 하고 국회와 협의해 국민연금수렴기구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당초 3월에 발표할 예정이었던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를 두 달 앞당겨 이달 중 내놓는다. 이를 바탕으로 오는 10월 국민연금 개혁안인 종합 운영 계획을 마련한다.
이번에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의 연구 책임자 윤석명 보사연 연구위원은 “좀 적게 받더라도 사망할 때까지 확실히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젊은 세대에 줘야 한다. 90년대생의 동의와 참여가 연금개혁의 동력”이라면서 “22%까지 다 올리자는 말이 아니다. 올리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10년 안에 15%까지만이라도 올리자는 취지다. 그래야 한숨 돌리고 또 대처할 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인구구조는 더 나빠진다. 이미 한번 골든타임을 놓쳤다.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 약 700만 명)는 적게 내고 많이 받은 뒤 노동시장을 떠났다”며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8~1973년, 약 635만명) 마저 노동시장을 떠나기 전에 빨리 걷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윤 연구위원은 “15%까지 올린 뒤 저소득자 연금을 지원하거나 부담이 되는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책을 생각하는 등 정부가 채찍과 당근을 고민하면 된다”며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모두가 공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