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규모 음악 페스티벌 중 하나인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 매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사막에서 열리는 코첼라에 올해 최초의 기록이 더해졌다. 주인공은 그룹 블랙핑크. 이들은 오는 4월15일과 22일 코첼라 메인 무대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로 출연한다. K팝 가수가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르는 건 코첼라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K팝 가수들을 향한 해외 페스티벌의 러브콜이 뜨겁다. 27일 가요계에 따르면 그룹 레드벨벳은 오는 6월8~10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프리마베라 사운드에 출연한다. 프리마베라는 2001년 시작해 20년 넘게 이어진 유럽 대표 음악 축제. 레드벨벳은 공연 첫날 무대에 올라 현지 팬들을 만난다. ‘포스트 BTS’로 명성을 떨치는 그룹 스트레이 키즈는 프랑스로 향한다. 7월21~23일 파리 롱샴 경마장에서 열리는 롤라팔루자 파리에서 첫날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른다. 블랙핑크는 코첼라 공연을 마친 뒤 7월 영국에서 열리는 하이드 파크 브리티시 서머타임 페스티벌에 출연한다.
낯선 풍경은 아니다.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제이홉은 지난해 7월31일 미국 시카고 그랜트공원에서 열린 롤라팔루자에 메인 무대 헤드라이너로 올랐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외신은 “제이홉은 진정한 위대함이 무엇인지 증명했다”(NME), “음악사에서 눈에 띄는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컨시퀀스 오브 사운드) 등 호평을 쏟아냈다. 소속사 후배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하루 먼저 롤라팔루자 무대를 밟았다. 지난해 4월 열린 코첼라에선 그룹 2NE1의 재결합 공연이 펼쳐졌다. 리더 CL이 코첼라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고 극비리에 멤버들을 모아 성사시킨 깜짝 공연이었다.
K팝 가수들은 어쩌다 해외 페스티벌 단골손님이 됐을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세계 음악 시장에서 K팝의 위상이 높아진 점이 가장 큰 원인이다. 유명 아이돌이 소속된 가요 기획사 관계자 A씨는 “K팝 산업은 온라인 콘텐츠에서 강점을 발휘해 코로나19 대유행이나 락다운에 관계없이 세계 팬들에게 퍼질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이런 변화는 음반 판매량에서도 감지된다. 국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K팝 음반 수출액은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처음으로 1억달러(약 1235억원)를 돌파한 뒤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전 세계 대중음악계에 다양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코첼라는 올해 처음으로 비(非)백인 가수로만 헤드라이너를 꾸려 화제를 모았다. 블랙핑크와 함께 헤드라이너를 장식한 배드 버니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라틴 팝을 주로 부른다. 또 다른 헤드라이너 프랭크 오션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미국 음악 매체 롤링스톤은 “장르와 인종을 다양하게 구성한 라인업”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NME는 “코첼라 등이 K팝을 열린 마음으로 포용하는 데 반해 영국은 이에 훨씬 뒤떨어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가수들에게도 해외 페스티벌은 인지도를 키우고 음악성을 인정받기 좋은 장이다. A씨는 “단독 콘서트는 K팝 팬덤 관객이 주를 이루지만, 페스티벌에는 일반 대중 관객이 많이 모인다. 아티스트의 이름과 실력을 더 널리 알릴 기회”라며 “야외 공연 특유의 공간감도 음악 페스티벌을 찾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가요기획사 관계자 B씨는 “해외 유명 페스티벌로부터 초청받아 무대에 오른다는 사실만으로도 네임밸류(영향력)를 인정받은 셈”이라고 했다. 인기 스타나 유명 인사라는 인식을 넘어서, 음악과 퍼포먼스로써 예술성을 인정받는 기회라는 의미다. B씨는 “페스티벌 출연은 대부분 해외 홍보 활동 중 하나지만, 다양한 취향을 가진 관객과 호흡한다는 점에서 아티스트들도 음악 페스티벌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