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치인이 고시원을 방문했다. 사람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좁은 방. 그는 이런 곳에 사람이 사느냐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법에서 정한 최저 주거기준은 14㎡(4.2평). 좁디좁은 공간에 부엌, 침실, 화장실이 꽉꽉 눌러 담겨 있다.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 대다수는 청년이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1월 한 달 동안 서울 곳곳 좁은 청년의 방을 찾아 문제점을 살폈다. 인터랙티브 페이지에서는 청년의 방을 생생히 담은 360도 카메라와 영상을 볼 수 있다. [편집자주]
침대에 누우면 머리와 발바닥이 벽에 닿던 고시원, 노상방뇨 악취가 창틈으로 스며들던 반지하방, 겨울이면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던 옥탑방, 싱크대와 신발장이 붙어있는 원룸까지. 독립한 이후 직장인 박모(여·31)씨의 집은 6.6㎡(2평)~16㎡(5평) 사이를 오갔다. 법에 쓰인 최저 주거기준 14㎡(4.2평)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기준이 좀 더 높아지면 박씨의 집도 넓어질 수 있을까. 법에 쓰인 숫자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2020년 기준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은 총 78만4423가구. 이 중 8만9389가구가 최저 주거면적인 14㎡에 못 미치는 방에 산다. 이들의 주거환경이 개선되려면 어떤 점이 달라져야 할까.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전문가 의견과 해외 사례를 참조해 대책을 짚었다.
최저 주거기준을 다룬 법은 2004년 도입됐다. 기존에 지어진 주택에는 소급해 적용하지 않는다. 상향 조정된 건 2011년 단 한 차례다. 국토교통부가 개정한 국내 최저 주거면적 기준은 부엌·화장실을 포함한 14㎡(4.2평). 1인당 주거면적과 평균 신장의 변화를 반영했다.
여전히 구멍은 많다. 한국의 최저 주거면적 기준은 해외 주요국보다 뒤처진 수준이다. 일본의 25㎡(7.5평), 싱가포르의 23㎡(6.9평)보다 작다. 영국의 38㎡(11평)와는 3배 가까이 차이 난다. 토지주택연구원이 제시한 1인 가구를 위한 임대 아파트 적정 규모 32.6㎡(9.8평)에도 미달한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공간이 필요할까. 취재에 응한 전문가들은 최소 40㎡(12평)의 공간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침실·화장실·부엌 등의 공간 분리도 필수적이다. 지난 10년간 1인당 주거면적이 늘어난 추세를 고려해 최저 주거기준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최저 주거기준은 지난 2011년 이후 12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국내 주택법에는 최저 주거기준을 위반한 불량주택을 제재할 수 있는 처벌조항이 없다.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강력한 행정조치를 취한다. 영국은 최저 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주택에 임대제한이나 강제철거를 명령한다. 미국은 정기적으로 실태 조사를 진행한다. 최저 주거기준을 위반한 경우, 주거 바우처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최저 주거기준만 해결한다고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갈수록 높아지는 주거비도 과제다. 청년의 대다수는 ‘렌트푸어’다. 렌트푸어는 소득 대부분을 집값으로 지출하는 이들을 뜻한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청년 1인 가구 10명 중 3명은 주거비 과부담 가구다. 월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이 30%를 초과한다. 주거 불안과 돈 문제는 떼래야 뗄 수 없다. 청년이 떠안는 막대한 주거비가 해결되지 않으면 고시원, 비닐하우스, 쪽방 등 취약한 환경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대안으로는 월세 지원 제도가 있다. 월세 지원 확대를 통해 청년주거 상향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 1인 가구 65.5%는 월세를 내며 산다. 전국 일반 가구(23%)의 3배에 달한다. 현행 청년 주거비 지원정책은 전세·자가 중심이다. 높은 월세에 시달리는 청년을 구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청년 월세 지원 사업도 갈 길이 멀다. 지원 규모가 △월 20만 원 △생애 1회 △최대 10개월에 그쳐 주거 사다리를 복원하는 데 역부족이다. 지원조건을 완화하고 혜택 범위를 늘리는 등 지원 방식이 개선돼야 하는 이유다.
사회적 인식 변화가 선 과제라는 의견도 나왔다. 임대인의 소유권과 마찬가지로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인권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일부 임대인은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열악한 집 상태를 알면서 방치한다. 적정하지 않은 임대료를 요구하는 일도 빈번하다. 14㎡가 안 되는 공간이 월 50만원을 웃돌고, 반지하 전세는 1억을 넘긴다. 전세대출을 이용하는 청년에게 대출 한도액까지 전셋값을 올려 받는 이들도 있다. 주거권 보장의 첫걸음은 임대인의 인식 제고에서부터 시작한다. 헌법 제35조 역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공공임대주택 확충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부 주도하에 청년이 살 만한 집이 늘어나야 한다는 의견이다. 청년 1인 가구의 높은 주거비 과부담 비율은 공공임대 공급 물량 부족과 관련돼 있다. 저렴하고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이 많아져야 청년주거 문제가 해결된다는 방증이다. 핵심은 민간이 아닌 정부·공공이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청년임대주택 매입 확대 △임대 기간 최소 10년 이상 보장 △임대 기간 종료 이후 분양전환 기회 부여 등 실효성 있는 주거 대책을 설계해야 한다.
전문가는 열악한 청년주거 해결을 위해 정부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지난해보다 5조7000억원 삭감했다. 국가가 충분한 돈과 인력을 투입해 주거 취약계층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의미”라며 “모든 것은 결국 정부 의지에 달렸다. 주거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을 위해 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집은 청년이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할 곳”이라며 “청년들이 결혼 등 생애 이행을 이뤄낼 수 있도록 촘촘한 주거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