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제시한 간호법 중재안이 베일을 벗었다. 간호법을 ‘간호사 처우법’으로 이름을 바꾸고 법 조항에 ‘지역사회’ 문구를 삭제해 의사단체가 지적한 간호사 단독 개원 우려를 덜어내는 방안이다.
그러나 간호사단체의 거센 반발로 민·당·정 간담회가 파행됐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여야가 합의 처리한 만큼, 수정 없이 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11일 국회에서 ‘의료 현안 민·당·정 간담회’를 개최했다. 당에서는 박대출 정책위의장과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 강기윤 보건복지위원회 간사 등이 참석했다. 정부에서는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 이형훈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이 자리했다. 유관 단체인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임상병리사협회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여당은 쟁점 법안인 간호법과 의료법 개정안(의사면허취소법)의 중재안을 제시했다. 우선 명칭을 두고 간호법을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률’로 수정하자고 주장했다. 또한 의사단체에서 간호사 단독개원 문제를 제기했던 제1조(목적) 조항에서 ‘지역사회’ 문구를 삭제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또 간호조무사 학력 요건은 특성화 고교 간호 관련 학과 졸업 이상으로 했다. 교육 전담 간호사와 간호 통합 간병서비스 등 간호사 업무 범위에 관해선 기존 의료법에 존치하도록 했다. 간호사 처우에 대해선 간호종합계획 수립 의무화, 간호정책심의위원회 규정 신설, 간호인력지원센터 광역시도별, 시도별 설치 근거 마련 등 내용을 담았다.
의료법 중재안은 개정안의 결격사유 부분을 모든 범죄에서 의료 관련 범죄와 성범죄, 강력범죄로 금고 이상의 실형으로 수정했다. 현행 행정 기본법 제16조 2항이 규정한 결격사유와 충돌한다는 이유에서다. 면허 재교부 역시 10년에서 5년으로 수정했다.
그러나 간담회를 진행한지 약 1시간 만에 회의장 안에서 고성이 오갔다. 급기야 간호단체가 단체 퇴장했다. 이들은 기자들에게 “합의를 거친 내용에 대해 수정하려 한다”며 “오늘 자리 자체가 불공정하다. 반대하는 사람만 모아놓고 회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당은 간호사단체만 반대 의사를 밝혔단 점을 강조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중재안에 대해 의협은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간호조무사협회도 중재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임상병리사협회 또한 의료기사와 보건의료 정보관리사 등의 업무 범위를 보다 명확히 해주는 전제로 동의했다”면서 “다만 간협은 이를 수용하기 어렵단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어 “각자의 입장만을 고수하다 보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발씩 양보해서 어느 정도 서로 원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법을 모색하자고 요청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여당에선 이번 간담회 개최 의도를 두고 ‘시간끌기용’이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특히 이미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여야가 함께 대거 수정을 거친 만큼 중재안은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간호법과 의료법 개정안은 복지위에서 만장일치로 처리된 법이다.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한 게 아니다”라며 “간호법이 아닌 간호사 처우 개선 같은 법의 성격으로 축소하는 건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분명히 해뒀다.
의사면허취소법 관련해서도 “변호사 등 전문직종처럼 (면허 취소 요건을) 똑같이 적용 받도록 개정안을 마련한 것”이라며 “그간 정부여당이 나서서 중재하지 않다가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니까 하는 척만 보여주고 있다.무책임하기 그지 없는 정부 여당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의료법 또한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또다시 시간 미루기 위한 꼼수로 나온다는 것에 대해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주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도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한 내용으로 다수 찬성한 법안에 대해 시간 끌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간호법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난 대선 공통 공약이다. 국민의힘은 간호단체를 만나면 간호법을 지지한다고 하고 의사단체를 만나면 간호법을 저지하겠다는 이중태도를 보여 사태를 악화시켰다. 국민의힘은 표 계산을 그만하고 여당의 책임을 다하기 바란다”고 질타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