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에 찾아온 위기를 외풍 차단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이도 있다. 전직 KT 임원을 지낸 한영도 상명대학교 경영경제대학 교수다. 한 교수는 지난 1987년 KT에 입사, 2012년 회사를 떠났다. 전산소부터 기획조정실까지 두루 거치며 25년간 신사업 기획 및 개발과 민영화 추진, 마케팅전략 업무, 자회사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전·현직 KT 임원이 모인 K-비즈니스 연구포럼의 의장으로 KT 정상화 관련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쿠키뉴스는 20일 서울 종로구 상명대학교 연구실에서 한 교수를 만나 KT 현 상황의 원인과 해법 등을 물었다.
-KT 차기 대표 선정을 두고 잡음이 지속됐다. 현 상황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현재 KT에는 견제 장치가 없다. 민영화 이전에는 감사원, 국정감사 등이 그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부재한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권한이 대표에게 집중됐다. 집행부와 이사회, 감사 등 형식적으로는 분권화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조직이 건강성을 잃었다. 사외이사 또한 정치권에서 건너오는 등 독립성과 다양성,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 이사회의 독립성이 결여되자 불신이 생겨났다. 이로 인해 대표이사 선임도 삐걱거렸다.
폐쇄적인 대표이사 선출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구현모 전 KT 대표의 첫 연임이 확정됐을 때 ‘깜깜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후 경쟁을 거쳐 구 전 대표가 선출됐지만 재차 투명성·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세 번째 대표 선정은 공개경쟁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후보자에게 요구한 자기소개서와 직무수행계획서 문항도 KT 전현직이 아니라면 답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서류를 통과한 후보자들이 모두 KT맨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내부 지향에 매몰된 것이 부메랑이 됐다. 이사회에서 좀 더 고민해 대표 부재라는 최악의 상황은 막았어야 했다.
-KT 대표 선임 관련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 리스크가 반복되고 있다
KT가 민영화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파를 불문, 정치권의 영향력에서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 정권마다 KT 대표 자리를 논공행상 대상으로 여긴다. 정권이 바뀌면 KT 직원들은 매번 홍역을 치른다. 계열사, 협력사도 마찬가지다. 경영혼란 및 공백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구 전 대표가 3년 전 취임사에서 “KT를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지만 예외는 없었다. 이는 KT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물론 국내 디지털 산업 발전에도 장애 요인이다.
KT 재직 당시, 새로운 사업을 개발해 추진하고 있었다. 이사회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대표이사가 달라지자 모든 게 무산됐다. 추진하던 사업의 보고 받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사이버MBA 인수 여부도 정권에 따라 번복됐다. 2000년대 초반 인수하려고 할 때는 임원 회의에서 보류됐다. 해당 기업이 당시 야권 관계자와 얽혀있어 부담스러워했다는 전언이다. 이후 2010년에는 상황이 바뀌어 시세보다 높은 금액을 주고 인수하려 했다. 당시 인수 책임자였던 저에게 압력과 회유가 들어왔다. 이를 거부하자 결국 회사를 떠나야 했다.
-KT와 비슷한 시기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들도 있다. 이들의 상황도 비슷할까.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기업도 있다. KT&G다. KT&G도 한때 정권의 전리품이라는 지적이 일었지만, 백복인 KT&G 사장이 지난 2015년 이후 오는 2024년까지 3 연임 중이다. 백 사장은 2016년 배임수재 혐의로 수사를 받았지만 1심과 2심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의 상고 포기로 무죄가 확정됐다. 깨끗한 경영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본다. 빌미를 주지 않은 것이다. 연구 결과, 경영진과 이사회, 감사위원회 간 견제와 감시 기능도 원활히 작동되고 있다.
-구 전 대표도 연임 선언과 공개경쟁 제안, 사퇴 등으로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이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을 발표했다. 이때 유관기관과 기업 대표들이 참석했는데 KT가 초청받지 못했다. 일종의 시그널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에 전·현직 임원들의 의견을 모아 구 전 대표에게 △본인과 회사에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도록 연임을 포기하거나 △DIGICO KT를 계승, 발전시킬 적합한 후임이 선임될 수 있도록 일정 역할을 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다음달 구 전 대표는 연임 도전을 발표했다.
-KT는 현재 ‘뉴거버넌스 구축 TF’를 구성,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TF 구성과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참여하는 전문가 모두 각계에서 상당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가진 분들이다. 구성은 매우 잘됐다. 문제는 그분들의 역할이다. 소 잡을 큰 칼로 멸치를 회 쳐서는 안 된다. TF의 역할은 사외이사와 대표 선임 절차, 지배구조 발전 방안 수립 등에 한정돼 있다. KT 지배구조는 국내외 어느 기업에 뒤지지 않는다. 폐쇄성과 불공정성이 문제다. TF 역할의 확대 조정이 필요하다. 현재 역할에 더해 사외이사 및 대표 선임 관련 인선자문단 역할, 선임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감시자 역할 수행 등이다.
또한 5개월이라는 TF 운영기간도 대폭 단축해야 한다.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KT와 계열사, 협력사를 고려해서라도 완료 기한을 1개월 내외로 단축해야 한다. 지난 2008년에는 대표이사 직무대행 체제 출범 후 70일 후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이와 비교하더라도 5개월은 너무나 길다.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현재 대표 직무대행이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대표 직무대행은 통상사무만 수행할 수 있다. 현재 진행되는 지배구조 개선 관련 직무는 통상직무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 법률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법과 정관 등에 따라 통상 업무를 벗어난 직무수행은 무효가 될 위험이 있다.
-현행 지배구조에 문제가 없다면 어떠한 방식의 개선이 필요한가. 향후 ‘낙하산’을 방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해법이 있는가.
정관대로 운영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게 문제다. 정관 25조의 사외이사 요건을 보면 직무수행에 필요한 정보통신, 금융, 경제, 경영, 회계 또는 법률 등 관련 분야에 충분한 실무경험이나 전문지식을 보유했는지 여부 등을 규정하고 있다. 독립성과 다양성, 전문성이 확보된 이사회가 주주 등 이해관계자로부터 신뢰성을 회복하는 것이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또한 외풍만이 아닌 내부의 영향력에서도 이사회가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의 거수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주주인 국민연금도 기금운용 목적에 맞게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