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그리소정 80mg 구합니다. 내성 와서 못 드시거나 갖고 계신 분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회원 800여 명이 참여하는 폐암 환자 커뮤니티 사이트인 한국폐암환우회 게시판에 올라온 글. 이곳에서 이런 글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약사법은 전문의약품은 의사의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없고, 온라인 거래 역시 불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환자와 그 가족들은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매달릴 수밖에 없다. 약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1차 급여 향한 논의 퇴짜 네 번, 폐암 치료제 ‘타그리소’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표적치료제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는 1·2세대 표적치료제에 대한 내성이 생길 경우 처방되는 3세대 치료제다. 표적치료제란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기전을 가진 약물이다. 국가암정보센터 자료를 보면 비소세포폐암은 폐암의 80~85%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다. 이 중 약 40%는 EGFR 변이를 가진 환자다.
타그리소는 지난 2016년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후 2017년 12월부터 2차 치료제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됐다. 이후 1차 치료 급여 논의를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에 네 번이나 상정됐지만 매번 통과하지 못했다. 타그리소만 급여화가 이뤄지면 다른 고가 신약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비싼 가격 때문에 보험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가 있었다. 폐암환우회에 따르면 타그리소를 비급여로 처방받을 경우 1년 기준 약값이 7000만원을 웃돈다.
국회 ‘급여 확대’ 필요성 인정…“모든 의료 행위 최종 소비자는 환자”
최근 타그리소의 1차 치료제 급여 확대 적용에 청신호가 켜졌다. 국회가 확대 적용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18일 청원심사소위원회를 개최하고 국회 회부 기준인 국민 청원 5만명의 동의를 얻은 타그리소의 ‘1차 치료 급여 요청’에 관한 청원을 심사해 그 타당성을 받아들였다. 청원심사소위는 타그리소에 대한 약가 협상이 진행 중인 것을 감안해 ‘계속 심사’ 결정을 내렸다.
타그리소는 지난달 심평원 암질환심의위 급여 기준 설정을 통과해 경제성평가소위원회 평가가 진행 중이다. 앞으로 급여 적용 1차 치료제로 허가받으려면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급여 적정성을 인정받은 뒤 국민건강보험공단 약가협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환자단체는 초고가 신약의 건강보험 기준 확대 심사·등재가 신규 건강보험 등재만큼 신속히 이뤄져 환자와 그 가족들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피력한다.
이건주 한국폐암환우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어떤 약제는 2차 치료제로 급여가 됐음에도 4년 이상 걸려 1차 치료제로 급여를 인정받고, 또 어떤 약제는 급여 신청 후 6개월 만에 2차 치료제 허가를 받아 1차 치료제로 확대하기 위한 국내 허가 신청을 냈다”고 전했다. 이어 “건강보험 기준 확대 심사 과정이 이렇게 더디면 환자들 입장에선 심평원이 환자들의 생사결정권을 갖고 정치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환자이기도 한 그는 “모든 의료 행위의 최종 소비자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약값의 결정이나 선택권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다”면서 “생명을 걸고 투병생활을 하는 환자들이 의료행정에 조금이나마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장은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신규 건강보험 등재는 예전에 비해 빨라졌지만, 건강보험 적용 기준 확대의 경우 굼벵이 걸음만큼 느리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와 제약사는 약가 힘겨루기를 중단하고 비소세포폐암 환자들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건강보험 기준 확대 결정 과정에서 변수가 많다며 면밀히 살피겠다고 했다.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 보험약제과 담당자는 “현재 타그리소정은 심평원 경제성평가소위에서 자료를 받아 평가 중”이라며 “그동안 비용 효과성이나 임상적 유의성 등을 검토했을 때 확인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돼 건강보험 기준 확대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현재 타그리소에 대한 연구 자료가 어느 정도 충족됐다고 본다”면서 “제약사의 재정 분담 정도 등을 살펴 기준이 설정될 것이기 때문에 경제성 평가 결과를 우선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