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안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정부가 연일 간호계와 소통을 늘리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간호사 관련 단체 만남을 위해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수행 일정까지 취소한 데다 간호사 처우 개선 방안을 서둘러 내놓는 등 막판 중재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간호법을 둘러싼 직역 간 입장 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정부의 설득이 통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조 장관은 지난 26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인봉의료재단 병원에서 간호사들과 간담회를 열고 “(간호 인력) 종합대책안이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이행되도록 지속적으로 현장 간호사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정부의 간호인력 지원정책이 현장에서 체감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복지부가 25일 발표한 ‘제2차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의 추진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종합대책에는 간호사 1명당 간호하는 환자 수를 현재 16.3명(상급종합병원)에서 5명까지 줄이고, 간호 인력을 확대해 현장 부담을 낮추자는 내용 등이 담겼다.
당초 내달 12일 ‘국제 간호사의 날’에 맞춰 내놓기로 했던 이번 대책은 2주 이상 앞당겨 발표를 서둘렀다. 이를 두고 27일로 예정된 간호법 제정안의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간호계를 설득하기 위해 ‘당근’을 꺼낸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실제로 조 장관은 대한간호협회(17일), 병원간호사회(19일), 이대목동병원 현장 간호사(20일) 등을 연이어 만나며 간호계와 소통 보폭을 넓혔다. 윤석열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 수행 역할마저 접고 간호사 단체와 만남을 추진하며 간호법 중재 행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가 막판 중재에 속도를 내는 데엔 이유가 있다.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 ‘의료대란’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간호법 제정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이 통과하면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박명하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은 25일 “간호법이 강행처리 된다면 13개 단체 보건복지연대와 함께 총파업으로 함께 투쟁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복지부의 이번 대책이 간호법 제정 의지를 꺾기엔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목표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추진 일정이나 재정 계획이 없는 탓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종합대책에는 ‘방향’만 있고 구체적 ‘알맹이’는 보이지 않는다”라며 “관련 단체와의 충분한 협의 없이 갑자기 시기를 앞당겨 발표한 것은 간호법 국회 처리와도 연동된 듯해 진정성마저 의심케 한다”고 꼬집었다.
간협 역시 26일 입장문을 통해 “이번 대책은 다른 보건의료자원 정책의 변화 없이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의사의 절대적 부족으로 인해 간호사에게 의사업무까지 전가하는 문제 등에 대한 개선 없이 ‘국민과 간호사 모두가 행복한 환경 조성’이라는 간호인력종합대책의 목표 달성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복지부의 종합대책 발표는 환영한다”면서도 “간호법 제정을 가로막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해 그 의미를 퇴색시키지 말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고 분명히 해뒀다.
간호법을 두고 국회 역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여야는 26일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원내대표 회동을 가졌지만 간호법 등에 대한 견해를 좁히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왔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언한 대로 27일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을 통과시킬 방침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야당의 강행 처리 시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까지 거론하며 맞서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5일 의원총회가 끝난 뒤 “본회의에 직회부된 간호법을 야당이 강행처리할 경우 대통령께 재의요구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