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은행이 코로나19 금융지원 차원에서 원금과 이자 납입을 미뤄준 대출이 3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오는 9월부터 지원조치가 순차적으로 종료되는 만큼 대규모 대출 부실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금융지원 대상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대출의 연체율이 이미 오르고 있어 부실 조짐이 조금씩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8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따르면 지난 4일까지 원금과 이자 납기가 연장된 코로나19 금융지원 잔액은 36조6206억원, 건수는 25만9594건이다. 이 가운데 만기연장 액수는 34조8135억원이다. 대출 원금·이자의 상환이 유예된 액수는 각각 1조5309억원과 2762억원이다.
코로나 상환유예 조치는 오는 9월 종료된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 충격으로 어려운 경영환경에 놓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지난 2020년 4월부터 시행해 왔다. 이후 해당 조치는 6개월 단위로 총 4차례 연장됐다. 다만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가 부실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2022년 9월 5번째 연장과 함께 향후 해당 조치를 민간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기조를 전환했다.
5번째 재연장 당시 대출 만기연장은 최대 3년, 원리금 상환유예는 최대 1년간 지원을 연장했다. 이에 따라 오는 9월 원리금 상환유예의 종료 시점이 다가온다. 만기 연장의 경우 오는 2025년 9월까지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만기연장을 반복해 지원받을 수 있다. 단 원리금 연체나 자본잠식, 폐업, 세금체납 등 부실 발생이 없어야 한다.
코로나 금융지원이 종료될 경우 부실이 증가할 수 있다는 조짐은 점차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지난해 3분기 0.19%에서 4분기에는 0.26%로 0.07%포인트(p) 뛰었다. 이는 코로나 사태 초기인 2020년 2분기 0.29% 이후 2년 반 만에 가장 높다. 2월말 국내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0.47%)도 전월 보다 0.08% 상승하며 불안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은행들도 지원 종료와 함께 부실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인식하고 대응에 분주하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말부터 내부적으로 ‘금융시장·실물경제 복합위기 비상 대응 협의체’를 만들어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도 지난 2월 연체율 등 자산 건전성 관리를 위해 ‘리스크 관리 태스크포스팀(TFT)’ 조직을 신설하고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일부 은행은 AI(인공지능)까지 총동원해 부실 징후 감지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재연장 압박이 있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9월 상환유예 지원 종료를 앞두고 리스크가 시스템으로 전이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충분한 충당금을 쌓아놓고 있다”며 “동시에 부실이 발생하기 전에 차주의 채무조정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추가 지원 연장은 부실을 감추는 효과를 낳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