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제도가 도입 초읽기에 들어갔다. 종이 서류를 직접 내야 하는 등 번거로운 절차를 전산화해 소액 보험료도 청구가 쉬워지도록 개선돼 가입자 편의가 크게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의료계 반발이 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의료기관이 실손보험 청구에 참여하지 않아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는 탓에 실효성 논란도 일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16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골자로 하는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보험금 청구 양식 통일, 방법 간소화를 권고한 후 14년 만에 어렵사리 첫 문턱을 넘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은 환자가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병원에 갈 필요 없이 청구 과정을 전산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받기 위해 관련 자료를 의료기관에 요청하면 중계기관 전산망을 통해 보험업계로 바로 전송하는 방식이 가능해진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서류 없이 병원에 요청하는 것만으로 전산을 통해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진료비·약제비 영수증, 진료비 세부 산정내역서, 병명 확인서 등을 서류로 받아 보험사에 직접 제출해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탓에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
보험 가입자의 편의성을 향상하기 위한 취지지만, 의료 현장에 도입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난제가 쌓여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의료기관의 참여 여부다. 의료기관이 보험사에 실손보험 가입자 진료 자료를 넘겨줘야 하는 것은 ‘의무’다. 그러나 이를 어겨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다.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5일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1소위에서 “(의료기관에서) 참여하지 않으면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인가”라며 “강제하는 수단이 있어야 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신진창 금융위원회 금융산업국장은 “과태료를 부과하는 안도 있었다. 다만 제도 첫발을 내딛는 데 있어서 자발적 협조에 기초하는 것이 맞지 않나”라며 “그래서 수석전문위원의 소위 심사 자료에는 처벌 조항은 안 넣는 것으로 돼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의료기관의 자발적 참여 없이는 ‘반쪽’에 불과한 법안이라는 뜻이다. 법안의 성패가 의료기관 동의에 달린 셈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개인 진료기록은 매우 민감한 의료정보인데, 이를 함부로 민간 보험사에 넘겨선 안 된다는 우려가 높다. 또한 보험사들이 이를 활용해 보험료 인상에 활용하거나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는 17일 공동성명서를 내고 “국민 편의보다 민간보험사 이익을 우선하는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통과된 데 대해 여전히 반대한다”며 “환자의 개인정보 보안을 담보할 수 없고, 환자의 의료정보가 넘어가면 결국 보험사의 지급 거절 명분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이연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17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처벌조항이 없다고 해서 강제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향후 처벌조항이 추가될 수 있고, 국민들 입장에선 ‘왜 이 병원은 안 되냐’며 병원에 항의할 수 있다. 의료 현장에서 국민과 의료기관 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질타했다.
법안 처리를 무조건 서두를 게 아니라, 의료계 우려를 덜어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김 이사는 “의료 행위의 법적·도의적 최종 책임이 있는 의사들 입장에선 우려할 수밖에 없다. 환자의 민감한 건강정보를 민간보험사에 넘길 때 보안 문제 등에 대해 국회가 의료계와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만약 국회에서 무리하게 추진한다면 의료 현장에서 원활하게 진행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