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 유출의 심각성이 커지는 가운데, 기술유출 범죄의 양형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8일 대법원에 ‘기술유출 범죄 양형기준 개선에 관한 의견서’를 대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해외로 유출된 산업기술 총 93건을 적발했다. 월평균 1.6건이 유출된 셈이다. 전경련은 “반도체, 이차전지, 자율주행차 등 주력산업을 중심으로 기술의 해외유출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국가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는데 비해 기술유출 시 처벌은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는 국가핵심기술의 해외유출 시 3년 이상 징역과 15억원 이하 벌금을 병과한다. 그 외 산업기술을 해외유출한 경우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그러나 실제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친다. 지난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처리된 제1심 형사공판 사건을 살펴보면 무죄(60.6%) 또는 집행유예(27.2%)가 87.8%에 달했다. 재산형과 실형은 각각 6.1%에 불과했다.
해외는 다르다. 대만은 지난해 법 개정을 통해 경제·산업분야 기술 유출도 간첩행위에 포함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을 중국과 홍콩, 마카오 등 해외로 유출하면 5년 이상 12년 이하 유기징역과 대만달러 500만 위안 이상 1억 위안(약 42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미국의 경우, 연방 양형기준을 통해 피해액에 따라 범죄 등급을 조정해 형량을 대폭 확대할 수 있다. 기술유출은 기본적으로 6등급 범죄에 해당해 0~18개월까지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액에 따라 최고 36등급까지 상향 가능하다. 이 경우, 15년8개월에서 최대 33년9개월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
전경련은 “우리나라 국외유출 1건당 피해액(약 2.3억달러)에 미국의 연방 양형기준을 적용한다면 32등급 범죄에 해당해 10년 1개월에서 21년 10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처벌 수준이 낮은 이유로는 △법정형 대비 약한 수준의 양형기준 △악용될 소지가 크고 불합리한 형의 감경요소 등이 꼽혔다. 기술 해외유출 시, 기본 징역형은 1년~3년6개월이다. 가중사유를 반영해도 최대 형량은 6년에 그친다. 양형 기준을 상향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전경련은 형사처벌 전력 없음, 진지한 반성 등이 감경요소로 고려되는 빈도가 높은 것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술유출 범죄의 경우, 범행 동기, 피해 규모 등이 일반 빈곤형 절도죄와 다르다는 것이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첨단기술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산업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행위는 개별기업의 피해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의 훼손을 가져오는 중범죄”라면서 “기술 유출 시 적용되는 양형기준을 상향조정하고 감경요소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