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도우미가 저출산 대책?… 들끓는 비판 여론

동남아 도우미가 저출산 대책?… 들끓는 비판 여론

‘가사서비스 외국인력도입 대응방안’ 국회 토론회

기사승인 2023-06-09 06:05:01
저출산 현상이 심각한 가운데 워킹맘들은 아이 돌봄과 업무 병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맞벌이 부부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싼 가격’의 동남아 가사근로자, 정부가 저출산 해결책으로 내놓은 특단의 대책이다. 저출산 원인으로 지목돼 왔던 ‘육아 비용 부담’을 덜고, 경력 단절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란 복안이다. 

이를 두고 “어불성설”, “저출산 원인을 잘못 분석했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8일 국회에서 열린 ‘가사서비스 외국인력도입 문제점과 대응방안 토론회’ 참석자들은 “재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도 열악한데… 외국인력 도입은 시기상조”

고용노동부는 이르면 하반기부터 서울시를 대상으로 시범사업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내국인과 중국 동포에 한해서만 허용되는 가사도우미를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출신 외국인에게도 열어줄 계획이다. 외국 인력이 가사 근로자로 취업하기 위해 비전문인력(E-9) 비자를 받고 한국에 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논의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월 38~76만원 수준”이라며 도입을 제안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 3월 “월 100만원 가사노동자”를 언급하며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않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도입 검토를 주문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들 주장의 공통점은 ‘싼 가격’에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검토하고 있는 시범사업 역시 국내 최저임금 수준, 약 170~200만원 정도의 가격대에서 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두고 돌봄노동을 가치 절하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에서 가사노동은 지난 70년간 ‘지워진 영역’이었다. ‘노동’으로써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지난해 가사근로자법이 제정된 이후에야 4대 보험을 보장하는 등 일자리 질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국내 가사근로자의 처우도 바뀌지 않은 채 외국인력을 섣불리 도입할 경우 부작용이 예견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 인증 기관인 한살림서울돌봄사회적협동조합의 이승언 이사는 “현재 현실적인 조건에서 과연 외국인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고용이 가능할까. 우리나라의 돌봄 시장이 안정화돼 있지 않고 또 제반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도입은 이용자에게는 불안을, 내외국인 돌봄노동자 모두에게는 돌봄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더 낮아질까 큰 우려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신입연구위원은 “돌봄노동 시장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장시간 일해도 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방치하고 외국인 노동력으로 인력부족을 충당하는 방식은 돌봄노동 시장 전체의 임금 및 노동 여건을 개선하는 데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 연구위원도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된 지 약 1년밖에 경과하지 않은 시점에서 내국인력 유입 가능성을 도외시한 채 외국인력 도입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가사근로자법을 통해 가사근로자에 대한 법적 보호를 추구하고 있지만 가사노동자에 대한 노동법 적용을 제외하고 있는 대만, 싱가포르 등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8일 국회에서 ‘가사서비스 외국인력도입 문제점과 대응방안 토론회’가 개최됐다.   사진=김은빈 기자

정책 수요가 높을지도 의문이 남는다. 조 연구위원은 “마치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처럼 호도해 외국인력에 대한 수요가 왜곡되었을 수 있으므로 실질적인 서비스 수요를 신중하게 파악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초등학생 두 자녀를 양육하고 있다고 밝힌 배수민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저출산 대응 정책이 겨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라니 실망이 크다. 돌봄은 누구든지 데려다 놓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며 “돌봄을 누군가 저렴하게 대신해 주면 저출산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저출산 원인을 완전히 잘못 분석한 것”이라고 쓴소리했다.

정부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국내 상황에 맞도록 정책을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이상임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은 “해외 사례에서 외국인 가사인력과 출산율이 관계가 없다고 하는데, 각국 노동시장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주거 비용, 일·육아 병행, 경력단절 우려, 양육비용 부담 등이 저출산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도 외국인 가사인력 도입이 저출산과 경력단절 문제 해결의 유일한 대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대책을 동시에 추진할 것”이라며 “일·가정 양립에 도움이 되는 과감한 대책이 될 수 있고, 맞벌이 부부에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민 여론을 수렴해 한국 상황에 맞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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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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