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적금을 대신해 은행이나 은행지주가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 등 자본성증권에 대한 투자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본확충이 필요한 은행권도 이러한 수요에 맞춰 자본성증권 발행에 적극적이다. 다만 자본성증권을 통한 은행권의 자본확충을 두고 조기 상환 및 이자 부담 등을 고려할 때 자본의 질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말 국내 은행 및 은행지주회사의 자본성증권 발행잔액은 62조3000억원으로 2017년말(20조7000억원) 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신종자본증권이 8조8000억원에서 31조5000억원, 후순위채가 11조9000억원에서 30조8000억원으로 늘었다.
자본성증권은 금융기관이 배당 지급에 대한 재량권을 갖고 영구채로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과 이자를 의무적으로 지급하고 만기 5년 이상으로 발행되는 후순위채로 구분된다. 또한, 특정요건(부실금융기관 지정 등) 발생시 상각되거나 보통주로 전환되는 조건부자본증권과 이러한 조건이 없는 비조건부자본증권으로 나뉜다.
은행권은 자본관리 수단으로 자본성증권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바젤Ⅲ기준에 따르면 신종자본증권은 기타기본자본으로, 후순위채는 보완자본으로 분류된다. 발행할수록 은행이나 지주의 자본력이 확충된다는 말이다. 이에 지난 3월 발생한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의 조건부신종자본증권 상각 사태에 주춤하던 자본성증권 발행이 다시 늘어나는 모습이다.
NH농협은행은 다음달 42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발행금리는 5% 수준이 될 전망이다. 이에 앞서 DGB금융지주가 1500억원, NH농협금융지주 4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성공했다. 우리은행 역시 연 5.13% 금리에 4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은행권이 발행한 자본성증권은 연일 완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급격하게 늘어나는 자본증권을 두고 우려 섞인 시선도 적지 않다. 특히 금융기관이 자본성증권의 조기상환이나 차환발행 과정에서 자금조달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자본성증권은 대체로 발행 5년 혹은 10년 후 조기상환을 옵션으로 발행된다. 조기상환 시 차환발행이 불발될 경우 현금성자산 등을 활용해 상환해야 하는 만큼 자본적정성과 유동성관리 측면에서도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예컨대 흥국생명은 지난해 5억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 시기를 맞아 차환발생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차환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조기상환을 포기했다. 흥국생명은 조기상환을 미실시하는 대신 신종자본증권 금리를 연 4.475%에서 6.7%대로 올려줘야할 위기에 몰렸다. 이같은 결정으로 시장 상황까지 악화되자 결국 흥국생명은 대주주 증자를 받아 조기상환하기로 입장을 번복했다.
자본성증권 발행이 늘어나면서 기본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이자도 부담이다. 2022년 중 은행권의 자본성증권 이자(배당)부담률은 5.7%에 달한다.
개인투자자 측면에서도 자본성증권은 부실기관 지정 등 특정요건이 발생했을 경우 원금이 상각되거나 이자지급이 제한되는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국내 은행권의 경우 자본비율이 탄탄해 실제 상각이나 이자제한 가능성은 낮지만 발생했을 경우 시장 충격은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은행권이 자본성증권 보다는 유상증자와 당기순이익을 중심으로 자본확충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경제 여건에 따라 (자본성증권은) 발행 금융기관과 투자자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자본성증권 발행은 보통주를 통한 자본확충이 어려운 경우에 한해 보완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