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이른바 ‘유령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출생통보제 법제화가 탄력을 받고 있다. 다만 의료계 반발이 커 법안 처리까진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의료현장에선 의료기관이 출생통보를 할 경우 행정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출생정보를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는 내용의 법안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26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여야는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법안의 신속 처리를 위한 논의에 돌입했다. 경기도 수원시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이 밝혀지며 법안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감사원이 보건복지부를 정기감사한 결과 지난 2015년부터 작년까지 태어난 영유아 가운데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무적자’가 약 2236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1%인 23명을 표본조사한 결과, 수원의 사례를 포함해 총 3명이 사망했고 1명은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권 밖에서 소외·방치되고 있는 영유아들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출생신고는 오직 부모에 달렸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형사 책임에서 자유롭고, 5만원의 과태료만 내면 된다. 이러한 탓에 의료·복지·교육 등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학대와 방임, 심지어 ‘영아 살해’가 일어나도 이를 국가 시스템상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 같은 돌봄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선 출생통보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경우 출생신고에서 누락되지 않게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는 제도다. 이 경우 모친이 직접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 아닌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알리기 때문에 ‘유령 아동’의 탄생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의료계는 행정 부담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기존에 발의된 출생통보제 법안은 의료기관이 읍·면·동사무소에게 신고하도록 돼 있다”며 “의료기관이 직접 신고하는 방식은 의사들이 일을 제대로 못하게 만드는 비정상적인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에 의료계의 부담을 줄이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안은 심평원이 내부 전자시스템을 활용해 지자체에 출생통보 의무를 지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회장은 “신 의원 발의안 내용이 아니라면 헌법소원까지 생각하고 있다”면서 “의사들은 기존과 똑같이 시스템에 입력하고, 심평원이 출생을 통보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출생통보제와 함께 보호출산제를 병행 도입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출생통보제는 신원 공개에 부담을 느끼는 등의 이유로 임신부를 병원 밖 출산으로 내몰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보호출산제는 산모가 일정한 상담을 거쳐 익명으로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러나 익명 출산을 보장할 경우 아이의 혈연에 대한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반대 목소리도 높은 실정이라 숙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복지부는 우선 ‘신생아 임시 번호’를 지자체에 통보해, 지자체가 바로 출생신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할 방침이다.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출생신고 전이라도 B형 간염 등 예방접종을 위해 7자리의 임시 신생아 번호가 부여된다. 이 출산 기록을 출생신고를 담당하는 지자체에 통보해 영유아들이 사각지대에 놓이는 일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