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에서 횡령사고가 재차 발생했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취임과 함께 ‘기업문화혁신 TF’를 출범한 것을 무색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금융당국이 꾸준히 강조해온 ‘내부통제 강화’ 기조 속 횡령사고가 재발함에 따라 ‘상생금융’ 선두에 서며 가까워졌던 우리금융과 금융당국의 관계가 다시 경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초 우리은행 내부 검사 중 전북 지역 지점에서 근무하는 직원 A씨의 횡령 사실이 적발됐다.
우리은행에서 파악한 결과 A씨는 가상자산 투자 목적으로 5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외환거래 환차익 총 7만 달러(한화 약 9000만원)를 빼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은행은 횡령한 돈 전액을 환수 조치하는 한편, A씨를 직무에서 배제하고 징계 절차를 시작할 예정이다. 또한 A씨가 근무하던 지점 역시 부실 관리 책임을 질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상 거래를 감지해 내부 감찰을 실시한 결과 횡령 사실을 확인했고, 시재에서 돈을 빼돌린 것이라 고객 피해는 없는 상태다. 현재 전액을 회수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피해가 없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이번 횡령사고가 발생한 시점이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금융권의 충격을 주고 있다. 횡령이 최초 발생한 지난 5월은 임종룡 회장이 취임한 지 불과 1개월이 지났을 때다. 일반적으로 새로 회장이 부임한 시기의 조직은 긴장감이 유지될 시기지만, 해당 기간서 사고가 발생한 것은 내부 문제가 그만큼 심각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당시 임종룡 회장은 취임과 함께 ‘신뢰받는 우리금융, 빠르게 혁신하는 우리금융’을 최우선 실천과제로 선정하고, ‘회장 직속 기업문화혁신TF’도 구성하며 △인사 △조직문화 △내부통제 등 내부 기강을 다잡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또한 지난 3일 제 55대 우리은행장에 취임한 조병규 은행장도 직원 모두의 신뢰를 회복하자며 “강화된 내부통제시스템과 명확한 프로세스를 구축해 고객이 신뢰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취임 포부를 전달했다.
하지만 이번 횡령사고가 발생하면서 임종룡 회장과 조병규 행장의 노력은 빛이 바래게 됐다. 이와 함께 우리금융이 ‘상생금융’에 적극적으로 선도하며 이뤄낸 금융당국과의 ‘해빙’ 국면도 다시금 어색해질 가능성도 생겨났다. 지난해 우리금융에서 600억원대 횡령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금감원과 우리금융의 관계는 냉각된 국면을 이어갔다.
이는 임종룡 회장 취임 이후 반전됐다. 임 회장은 은행권 ‘상생금융’ 최초 참여를 비롯해 내부통제 개선, 카드업권 최초 우리카드의 ‘상생패키지’ 발표 등 금융당국의 정책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금융당국과 우리금융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우리은행에서 재차 발생한 횡령 사고는 금융당국으로서도 곱게 넘어가긴 힘든 상황이 됐다.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책무구조도’를 도입했는데, 지배구조법상 ‘임원’들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규정한 것이 핵심이다.
책무구조도에 기재된 임원은 내부통제 기준의 적정성, 임직원의 기준 준수여부 및 기준의 작동여부 등을 상시점검 하는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특히 대표이사는 내부통제 총괄 책임자로서 전사적 내부통제체계를 구축하고 각 임원의 통제활동을 감독하는 총괄 관리의무가 부여된다. 만약 지속적인 사고가 발생, 내부통제의 ‘시스템적 실패’가 일어날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대표이사가 지게 된다.
당장 이번 사고가 임종룡 회장이나 조병규 은행장에게 ‘시스템적 실패’로 규정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다만 금융당국이 야심차게 발표한 개선안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이 일어난 만큼 ‘어색’한 관계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하긴 힘들게 됐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횡령이 발생했을 당시 빠르게 이를 잡아낸 것은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며 “다만 1년 사이 사고가 재차 발생한 것은 조직원들의 도덕적 문제 및 기강 문제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