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요구는 절박합니다. 최소한 밥 먹을 시간, 화장실 갈 시간이라도 보장되면 좋겠습니다.”
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13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산별총파업 투쟁 1일차 대회사를 통해 이같이 호소하며 포문을 열었다.
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전국 곳곳에서 2만여명(주최 측 추산)의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운집했다. 빗줄기가 굵어져 무대에 천막을 설치할 정도였지만, 집회 참가자들은 자리를 굳게 지켰다. 이날 집회로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에서 대한문 방향 세종대로 5∼7개 차로가 통제됐다.
노조가 대규모 파업투쟁에 나선 건 지난 2004년 이후 19년 만이다. 총파업에 나선 곳은 전국구 122개 지부 140개 사업장이다. 조합원 6만여명 중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필수유지업무에 투입되는 조합원 1만5000여명을 제외한 실제 파업 인원은 4만5000여명이다. 병원별로는 45개 상급종합병원 중 △고대의료원 △경희의료원 △아주대의료원 △이화의료원 △한림대의료원 △한양대의료원 등 20곳이 파업에 참여했다.
이들은 빗속에서 ‘국민건강 지키는 산별총파업 승리’,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공공의료 확충, 의료민영화 중단’ 등의 내용이 담긴 손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원들은 특히 직종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규 간호사의 52.8%가 1년 안에 그만둘 정도로 근무환경이 열악하며, 간호사당 담당 환자 수가 많은 탓에 환자들 역시 낙상이나 욕창 사고에 노출돼 있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25년차 간호사라고 밝힌 공지현 한양대병원 지부장은 “간호사 1명이 많게는 40명까지, 평균 20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10시간이 넘게 근무하면서도 밥을 못 먹는 것은 당연하고,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 뛰어다니다가 몸도 마음도 지쳐 퇴근할 때면 언제까지 이렇게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탓에 간호사 동료들이 현장을 떠나는 실정이다. 공 지부장은 “묵묵히 제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보건의료 노동자가 더 이상 병원을 떠나지 않도록 근무조별 간호사 배치 수준을 높이고 각 직종별 적정인력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코로나19 전담병원 정상화를 위해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전담병원 해제 이후 지역 공공병원들은 적자가 회복되지 않고 있어 존립이 위태롭다는 현장 증언이 나왔다.
동헌 남원의료원 지부장은 “코로나19 시기에 떠났던 의사와 환자들이 전담병원 해제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전담병원들은 병상 가동률이 40%를 넘지 못하고 있으며 매월 병원 적자가 많게는 20억원까지 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재정난에 허덕이며 임금체불을 걱정하고 있다”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행정명령대로 일반 환자를 다 내보내고 코로나19 환자만 본 결과인데 지금 정부는 ‘나몰라라’ 하고 있다”며 질타했다.
노조는 이밖에도 △비싼 간병비 해결을 위한 간호간병통합 서비스 전면 확대 △무면허 불법의료를 근절하기 위한 의사인력 확충 △필수의료서비스를 책임지는 공공의료 확충 △코로나19 영웅에게 정당한 보상과 9·2 노정합의 이행 △노동개악 중단과 노동시간 특례업종 폐기 등을 요구했다.
노조를 향해 ‘정치파업’이라며 협상의 문을 닫은 보건복지부를 향해 날을 세우기도 했다. 나 위원장은 “파업을 앞두고 복지부는 대화와 협상을 중단했다. 이는 복지부가 파업을 유도한 것”이라며 “‘국민들의 간병비 고통 해결하자’, ‘국민 생명을 살려낸 공공병원 살려내자’ 하는 것을 정치파업이라고 한다면 이런 정치파업은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파업으로 인한 환자 불편에 관해서는 “파업으로 걱정과 불편을 끼치게 돼 죄송하다”면서도 “보건의료노동자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인력대란이 일고, 환자들이 각종 의료사고에 노출되면서 불법 의료 피해를 입는 상황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빨리 파업이 해결될 수 있도록 지지해달라”고 당부했다.
노조는 정부가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무기한 투쟁을 이어나간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사용자와 정부가 실질적이고 전향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지 않을 경우 무기한 산별총파업 투쟁을 이어간다”며 “인력 확충과 공공의료 확충에 합의했던 노정합의를 2년이 되도록 이행하지 않고, 의료현장의 인력대란과 필수·공공의료 붕괴위기를 방치하고 있는 복지부를 대상으로 전개할 계획”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오는 14일에도 서울, 세종시, 부산, 광주 등 4개 지역에서 산별총파업 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