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연금개혁’ 윤곽이 드러났다.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향후 70년간 연금 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방식’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보험료율을 12%, 15%, 18%로 단계적으로 올리고 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66세, 67세, 68세까지 늘리는 방안이다. 지금과 비교해 향후 얼마를 받게 되는지(소득대체율)는 위원 사이 이견을 좁히지 못해 이번 보고서에는 빠졌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재정계산위)는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차 재정계산 공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 관련 최종보고서 초안을 공개했다. 국민연금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정부 자문기구인 재정계산위는 9개월간 21여 차례의 회의를 통해 이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향후 70년간 적립기금 유지가 목표… 국민 불안 잠재운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국민이 내는 보험료율은 9%, 향후 받게 되는 소득대체율은 2028년까지 40%,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인 수급개시 연령은 1969년생부터 65세로 조정되는 것으로 정해져있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가 유지된다면, 2055년에는 곳간이 바닥난다. 저출산·고령화 심화에 따라 제4차 재정계산과 비교해 기금 소진 시점은 2057년에서 2055년으로 2년 앞당겨졌다. 이에 따라 국민적 불안도 크다. ‘1990년생부터는 국민연금을 못 받게 된다’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청년층 사이에선 ‘기금이 고갈된다는데 왜 내야 하나’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에 재정계산위는 재정계산 기간(70년) 중 적립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20세 가입자가 평균수명(2070년 91.2년)에 도달하는 시기까진 기금이 고갈되지 않고, 국민연금을 안전하게 수급할 수 있음을 명확히 시현해 국민 불안을 잠재우겠다는 의도다.
특히 적립기금을 유지해 세대 간 형평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올해 기준 국민연금의 가입자 대비 수급자 비율(제도부양비)은 24%다. 가입자 100명당 수급자가 24명이란 얘기다. 2080년엔 제도부양비가 143.1%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미래세대 가입자 100명이 수급자 143명을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김용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장은 “국고 지원도 한계가 있다. 결국 적립기금이 없어지면 보험료율을 34%까지 높여야 당시 수급자들에게 연금을 지급할 수 있다”며 “미래세대의 부담이 커지지 않기 위해선 2093년까지 적립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내고 더 늦게 받는다
2093년까지 곳간이 바닥을 보이지 않기 위해선 재정계산위는 3가지 조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금 보험료율 상향, 연금 지급개시 연령 조정, 기금투자수익률 제고를 병행해야 한다.
우선 우리 국민 주머니에서 얼마나 더 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연금 보험료율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재정계산위는 전했다. 문제는 ‘얼마나 올리느냐’는 것이다. 재정계산위는 오는 2025년부터 매년 0.6%p씩 올리자고 제안했다. 보험료율은 5년 후 12%, 10년 후 15%, 15년 후 18%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에 현재도 늦춰지고 있는 노령연금 수급 연령을 장차 68세까지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65세가 되는 2033년 이후 같은 스케줄로 2038년부터 5년마다 1살씩 늘리자는 뜻이다. 2038년 66세, 2043년 67세, 2048년 68세까지 개시연령이 높아진다.
다만 보험료율과 연금 지급개시 연령 상향 조정은 기금투자수익률에 달렸다. 기금투자 수익률이 높아질 경우 보험료율과 연금 지급개시 연령 상향을 멈추는 것도 가능하다는 게 재정계산위 주장이다. 김 위원장은 “기금 운용만 잘하면 보험료율과 연금 지급개시 연령 인상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금투자수익률 제고를 위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발전 전문가위원회(기발위)가 제안한 방식은 ‘기준 포트폴리오’ 도입이다. 기준 포트폴리오는 자산군을 주식(위험자산)과 채권(안전자산)으로 단순화한 자산배분이다. 큰 틀의 자산배분 방향성을 전문가 단체가 정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위험자산 투자를 늘려 기금투자 수익률을 0.5%p에서 1%p까지 제고할 방침이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연평균 7% 이상의 수익률을 낸 캐나다, 미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해외 공적연기금은 위험자산 비중이 60% 이상인 반면,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과도하게 국내 투자 비중이 높다는 것이 기발위의 설명이다.
박영석 기금운용발전위원장은 “기준 포트폴리오를 도입하면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비율을 높이는 등 전략적 자산 배분에 있어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가령 45대 55나 7대 3 등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투자 비율이 제시돼야 글로벌 공적연금 수준의 수익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금투자 수익률의 불투명성에 관해선 재정계산위는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김 위원장은 “정부는 현재 기금 운용 수익률을 연평균 4.5%로 잡고 장기 재정전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35년간 평균 기금운용 수익률은 5.1%”라며 “지난 35년간 유지했기 때문에 5.1%의 수익률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5.1%로 장기 재정전망을 계산했다”고 말했다.
보험료율 15% 인상+지급개시 연령 68세 유력
재정계산위는 보험료율에 따라 지급개시 연령 상향, 기금투자 수익률 제고를 조합한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먼저 보험료율 12%까지 상향, 지급개시 연령은 68세까지 늘리고, 기금투자 수익률을 1%p까지 제고할 경우 기금은 2080년에야 소진된다. 재정계산위 목표인 2093년까지 기금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적어도 보험료율은 15%까진 늘려야 한다. 보험료율을 15%까지 상향하고 지급개시 연령을 68세까지 높이면 기금소진 연도가 2082년으로 늦춰진다. 추가로 기금투자 수익률을 0.5%p 높이면 2091년에야 바닥을 보인다. 기금투자수익률을 1%p까지 제고한다면 2093년까지 기금을 유지할 수 있다.
보험료율을 18%까지 인상하면 2082년에 기금이 고갈된다. 여기에 지급개시 연령 조정이나 기금수익률 제고 둘 중 하나만 더해지면 2093년에 기금을 소진하거나 재정추계기간 동안 기금을 유지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12% 보험료율 인상으론 2093년까지 적립기금 유지를 약속할 수 없다. 그런데 18% 보험료율 인상의 경우 고소득자가 내는 것보다 적게 받게 되는 문제가 있다”며 “보험료율을 15%까지 높이면서 3가지 조합을 통해 2093년까지 적립기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출산·군복무 크레딧 확대… 지급보장 법제화 제안도
출산, 군 복무에 대한 지원은 강화해 크레딧 제도를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출산 크레딧 제도는 2008년 이후 둘째 자녀를 출산할 경우 추가 가입기간을 인정하고 있다. 이를 첫째아부터 자녀당 12개월씩 크레딧을 부여(최대 60개월)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권고하고 있다. 재원 마련도 현행(국고 30%, 기금 70%)제도에서 국고 지원을 100%까지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군 복무 크레딧도 노령연금 수급권 취득 시 6개월만 인정했는데, 이를 군 복무 전 기간에 대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내놨다.
아울러 보고서는 국민연금 지급보장의 법제화 필요성을 담았다. 국민연금법에 ‘국가는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문구가 2014년 신설됐으나, 현행보다 지급보장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재정추계위는 “국민 안심 차원에서 지급보장 법제화 조치를 고려해볼 수 있으며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연금개혁과 연계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가입연령 조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노령연금의 수급 연령은 2013년부터 5년마다 1세씩 늘어나는 중이나, 가입 연령 상한은 59세로 고정돼 있는 탓이다. 가입 연령은 고정한 상태로 수급 연령만 조정하고 있어 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는 기간도 증가해 노후소득보장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에는 “가입 연령 상한을 수급개시 연령에 순차적으로 일치시켜 추가적 가입 기간을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며 “다만 소득이 없는 이는 보험료 납부 의무는 없으며 2033년까지 과도기적으로 사용자와 근로자 간 합의에 따라 가입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소득대체율 관련 내용은 이번 보고서에서 빠졌다. 소득대체율 유지와 상향을 두고 재정계산위 위원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보고서에 소득대체율 관련 내용은 없다. 다만 표기는 되지 않았지만 위원회에선 인상 여부 관련 논의와 검토가 있었다”며 “12월 최종보고서에선 소득대체율 관련 내용이 협의될 경우 포함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스란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정부도 소득대체율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지막 회의 때도 정부에선 가급적 (소득대체율 관련 내용을) 명기하도록 요구한 바 있다”면서 “명목소득대체율, 실질소득대체율 논의가 반영돼 명시적으로 보고서에 언급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