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60세까지 할 수 있는데, 연금은 8년 뒤인 68세에 수령할 수 있다. 국민연금 고갈을 미루기 위해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제시한 방안을 두고 논란이다. 수급개시연령까지 소득 공백이 길어지는 탓이다. 노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정년 연장 등 노동개혁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4일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재정계산위)가 지난 1일 공개한 연금개혁 관련 최종보고서 초안에 따르면 연금 지급개시연령을 65세(2033년 기준)에서 2038년부터 5년마다 1세씩 늘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2038년 66세, 2043년 67세, 2048년 68세까지 개시연령이 높아진다.
재정안정화를 위한 조치다. 현행 제도가 유지된다면 2055년에는 기금이 소진될 전망이기 때문에 보험료율과 연금 지급개시연령의 단계적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재정계산위의 주장이다. 이에 연금개혁안에는 향후 70년간 연금 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약 2배 더 내고(보험료율 18%) 3년 더 늦게 받는’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근로자들이 정년 퇴직 후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까지 공백이 생긴다는 점이다. 68세로 늦춰지면 60세 퇴직자는 8년간의 소득공백을 버텨야 한다.
특히 노후 불안이 높은 사회에서 소득 공백 발생은 치명적이다. 한국은 노인빈곤율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국가다. 2018년 기준 한국의 노인인구 소득빈곤율은 43.4%로, OECD 국가 평균인 13.1%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이는 소득 공백이 발생할 때 버텨낼 여력이 낮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도 연금 수급개시연령이 63년이라, 3년간의 소득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재정계산위 역시 소득 공백 해소를 위해 고령자 고용정책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고서에는 “지급개시연령의 연장은 노동시장 개선을 통해 고령자가 계속 근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등 고령자 고용정책과 병행해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법정 정년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법정 정년을 오는 2033년까지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과 같은 65세로 높여야 한다며 관련 법 개정을 위한 국민 청원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4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년과 연금 수급개시연령이 따로 가선 안 된다”면서 “정년 연장이 필수 전제조건은 아니지만, 고령자 고용 현황이 나아지지 않는 상태에서 이러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유감”이라고 질타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민간자문위원회 위원들은 수급개시연령 상한을 두고 입장 차를 보였다.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은 “수급개시연령을 68세로 늘리면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 효과는 나타날 수 있지만, 전체 국가 차원에선 풍선 효과”라며 “소득 공백이 길어지면 노인 빈곤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에선 기초연금 확대 등을 통해 공공부조에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효과가 떨어지는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현재도 발생하고 있는 소득 공백을 해소해야 국민들의 정부 연금개혁 수용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오 국장은 “고령자 고용 보장 강화, 정년 연장 등 노동개혁과 연동해 추진하는 정부의 노력이 있어야 국민들도 신뢰하고 수급개시연령 연장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크레딧 확대 등을 통해 취약계층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험료율만 올린다면 수용 가능성이 떨어지는 만큼 수급 연령 상한과 기금운용 수익률의 조합이 필요했던 것”이라며 “2048년에 68세까지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기대수명 증가 등을 고려해보면 합리적인 속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년 연장은 공무원, 교사, 대기업 등 안정적인 상위 약 10%의 근로자들만 혜택을 받는 대책”이라면서 “수급개시연령 상한과 동시에 취약계층을 위한 보험료 지원, 크레딧 확대, 기초연금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