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 선 선생님을 존경해 교사를 꿈꾼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워요. 어떤 학생은 저에게 ‘XX년아’라고 욕설을 하고 무시하는 데도, 학부모 민원이 무서워 제대로 훈계를 못하는 제 자신에게 자괴감도 들었어요. 정신과 진료를 보니 우울증이라더군요.”
경기도 고양시 소재 A초등학교 교사 김모(29)씨는 9일 이같이 털어놨다. 그는 최근 우울증으로 휴직계를 냈다. 김씨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무기력증이 왔다. 나를 위해서라도 그만두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라며 “비슷한 이유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동료 교사들이 주변에도 5~6명은 된다”고 말했다.
10일 자살예방의 날을 맞은 가운데 교사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7월 서이초 사태 이후 극단 선택으로 세상을 등진 교사는 최근 5명에 달한다. 지난달 31일 서울 양천구와 전북 군산의 한 초등교사가, 지난 3일엔 경기 용인의 한 고등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7일에는 대전 유성구와 충북 청주의 초등교사가 떠났다.
동료들의 안타까운 비보를 접한 교사들의 마음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녹색병원이 발표한 ‘2023년 교사 직무 관련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사 3505명 중 63.4%가 우울 증상을 겪었다고 답했다. 일반 성인보다 4배 이상 많은 비율이다. 녹색병원에 따르면 이번 실태조사와 같은 도구로 진행한 일반 성인 대상 연구에서 심한 우울 증상 유병률은 9.0%였다.
10명 중 1명 이상은 극단적 선택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최근 1년간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16%였다. ‘자살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운 적 있다’는 응답도 4.5%에 달했다.
비극이 더는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교사들의 우울증은 학생들의 교육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공교육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직업적인 요인이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자살 사건이 잇따르는 것도 직업적인 무력감, 박탈감 등이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울한 상태에서 학생들을 돌보는 건 국가적으로도 큰 마이너스”라며 “행정적 지원과 더불어 교사들의 마음건강을 위한 창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학부모 민원 등으로 인해 교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이 무기력증을 부른 것으로 보인다. 우울증을 앓으면 활동이 느려져 가르치는 데 문제가 생긴다. 당연히 학생들의 교육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면서 “학생들의 보호받을 권리와 교권이 평형을 이룰 수 있도록 교사들도 정신건강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 “자살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란 얘기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곪았던 부분이 이번에 드러난 것”이라며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교사만의 할 일은 아닌데, 그간 교사들에게만 짐을 지게 한 부분이 있다. 교사들의 짐을 사회가 같이 나눌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하고 교육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교사들에 대한 정신건강 지원을 비롯해 과중한 행정적 업무에 대한 실질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악성 민원의 경우 교사 개인에게 맡기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본다”면서 “교사들을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지 사회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위기에 놓인 교사들에게 주변에서 손을 먼저 내밀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누구나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을 청하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울증이 심할수록 거꾸로 절망에 빠져 주변 도움을 구하지 못할 수 있다. 이때 주변에서 먼저 알아주고 빨리 발견할 수 있도록 다가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