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섬을 갖고 있단 사실을 아시나요? 인천만 하더라도 40개의 유인도와 128개의 무인도가 있습니다. 인천 섬마을의 65세 이상 노령인구 비율은 평균 31%로, 인천 평균(15%)의 2배를 웃돕니다. 하지만 보건지소나 보건진료소를 제외하면 병원이라곤 인천의료원이 운영하는 백령병원 1곳뿐입니다. 아파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 이어집니다. 진료나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병이 커지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건가요? 지리적 특성 등으로 인해 건강관리가 취약한 도서지역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또 열악한 의료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살펴봅니다. [편집자주]
“알려드립니다. 오늘 오전 10시 의사 선생님들께서 노인정을 방문하셔서 진료하게 됐으므로 진료를 신청하신 분들께선 방송을 들으시는대로 노인정으로 가셔서 진료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지난 6일 오전 10시.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에 딸린 면적 2.22㎢의 작은 섬마을 승봉도에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밭일을 막 마치고 온 듯 흙 묻은 장갑을 끼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이어 마디가 튀어나온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다가오는 할머니의 얼굴 주름이 선명해진다. 삼삼오오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으로 모여들었다. 마을에 의사가 왔기 때문이다.
이날 가천대 길병원 의료진과 행정직원들이 승봉도 무료진료에 나섰다. 인천시가 의료시설이 열악한 섬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1섬 1주치병원 도서지역 무료진료사업’의 일환이다. 육지와 연결되지 않은 7개 면 단위 섬을 인천 관내 종합병원이 1개씩 맡아 주기적으로 진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길병원은 지난 2015년 12월 첫 진료사업을 시작해 북도면, 자월면, 덕적면 주민을 진료해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진료를 잠시 접었다가 올해 다시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월면의 주치병원이 됐다.
이번 진료엔 류마티스내과와 한방과 교수가 동행했다. 30여명의 주민이 마을회관 1층에서 침을 맞고, 2층에선 약을 처방 받았다. 마을회관을 찾은 주민들은 고된 농사일로 상한 무릎과 허리 등 관절 부위를 가리키며 통증을 호소했다. 현재 승봉도는 주민 120여명 중 65세 노인 인구가 70%에 달한다. 관절염은 물론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도 삶을 파고들어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여러 질환을 달고 살며 때론 증상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주민들은 오랜만에 마주한 의료진에게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전했다. 승봉도에서 20년간 지낸 김영후(86) 할아버지는 “농사일을 하니까 손마디가 굵어지고 관절이 쑤시는데, 이렇게 직접 진료를 와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승봉도 토박이인 항무인(86) 할머니도 “무릎과 어깨에 침을 맞았더니 아픔이 제법 가시는 것 같다”라고 했다.
정년퇴직한 남편과 함께 10여년 전 섬으로 들어온 주옥섬(72) 할머니는 과거 길병원이 진료를 왔을 때 큰 덕을 본 적이 있다. 주 할머니는 “몇해 전 길병원 진료를 통해 남편이 심장검사를 받았는데 심장 한쪽이 크다는 진단을 받았다”라며 “큰 병원을 가보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인천의 심장전문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살면서 몸이 아프거나 불편함을 가진 적이 없었다. 당시 진료가 없었다면 지나칠 뻔했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민들은 ‘찾아오는 진료’가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주민회관 옆으로 하나 있는 보건진료소에 의지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병원 진료를 받으려면 큰마음 먹고 섬을 나서야 한다. 스무살에 결혼해 40년간 섬에서 산 김승애(65) 할머니는 “보건진료소가 생기면서 예전보다 치료 환경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외부에서 오는 진료가 꼭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주옥섬 할머니도 “‘배 타고 어디 가느냐’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병원 간다’라고 한다”라며 “감기에 걸리거나 머리가 아프면 보건진료소에서 약을 타먹으면 되지만, 그보다 큰 병이 생겼을 땐 섬 밖을 왔다 갔다 해야 한다는 점이 불편하다”라고 털어놨다.
무료진료를 마친 의료진은 기회가 되면 섬을 다시 찾을 생각이다. 섬 진료가 처음이었던 정아람 가천대 부속 길한방병원 교수는 “어깨와 허리, 무릎의 만성적인 통증으로 불편해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침을 놔드리고 통증 완화에 도움 되는 한방약과 파스 등을 처방했다”라며 “환자들과 얘기 나눠보니 병원 이용에 많은 불편함을 겪고 있었다. 치료를 이어가면 많은 도움이 될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어 “배를 타고 나가서 병원 치료 받고 오는 일이 체력적으로 쉽지 않으실 것”이라며 “이번에 치료 받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진료 기회가 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 진료 기회가 생기면 망설임 없이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재덕 가천대 길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해드린 게 별로 없는데 환자들로부터 큰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전했다. 서 교수는 “디스크 질환이 있는 환자가 수술 후에도 통증이 계속된다며 찾아왔다”면서 “환자 본인은 참고 지낼만하다고 말했지만, 진단해보니 치료가 지체되면 다시 수술해도 후유증이 남을 것 같아서 당장 병원에 가시라고 권했고, 설득 끝에 병원에 가보겠다고 하셔서 안내를 도와드렸다”며 안도했다.
이날 오후 2시까지 진료를 본 의료진은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섬을 뒤로했다. 다음 목적지는 내달 11일 대이작도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