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년 전 백혈병을 진단받은 김채이(26)씨는 항암 치료 과정에서 수혈이 필요한 순간들이 생겼다. 하지만 매일 공급되는 혈액량이 일정하지 않아 지인들에게 지정헌혈을 부탁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혈소판 혈장은 더 구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헌혈에 동참하는 사람들 덕분에 무사히 수혈을 받을 수 있었다. 김씨는 치료를 받고 대학을 졸업한 뒤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김씨는 “헌혈은 생명을 살리는 가치 있는 나눔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헌혈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헌혈은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가치 있는 일이지만, 별것 아닌 행위로 치부되기도 한다. 적극적인 헌혈을 통해 아프고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제때 수혈받을 수 있도록 헌혈에 대한 홍보와 인식을 강화하고, 헌혈자에 대한 예우를 보장해 지속적인 헌혈을 독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5일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다회 헌혈자 포상 등 예우 강화를 통한 헌혈 활성화 방안 모색’을 주제로 주최한 정책세미나가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개최됐다.
한국은 만성적 혈액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해 주로 헌혈하는 젊은 인구가 감소하고, 반대로 수혈을 필요로 하는 노인 인구가 증가하며 혈액 부족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저출산 영향 때문에 우리나라 헌혈 가능 인구(16~69세)는 올해 3917만명에서 오는 2050년 2758만명으로 약 3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가 늘면서 혈액 사용량이 증가해 2015년 189만유닛(Unit)이었던 적혈구제제 사용량은 2019년 200만유닛으로 늘었다.
정부는 헌혈 증진을 위해 지난 2020년부터 혈액관리법을 잇따라 개정했다. 또 헌혈자 예우 증진 차원에서 2021년 ‘헌혈자의 날’을 제정해 지난해부터 다회 헌혈자나 헌혈 증진 활동에 앞장선 사람·단체에 보건복지부 장관 훈장과 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조례를 제정해 기념품, 상품권 등을 지급하며 헌혈자를 지원하고, 공무원 헌혈 공가 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다회 헌혈자들은 아직 헌혈의 필요성과 인식이 저조한 편이라며, 헌혈자 예우를 보다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식 개선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982년부터 2019년 암 판정을 받기 전까지 36년간 359회에 걸쳐 헌혈을 실천한 양희성 다회헌혈봉사회 전국협의회 고문은 “헌혈 장려를 위해 공짜 영화표나 기념품을 주는 것보다 헌혈자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게 좋다”라며 “헌혈자의 날에 대통령이 직접 다회 헌혈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언론에 헌혈자들의 이야기가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전했다.
27년간 226회 헌혈한 이지연 다회헌혈봉사회 전국협의회장은 “여성 중에는 철분 부족 등 신체적 약점 때문에 부적격 판정을 받아 헌혈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여성 헌혈자에 대한 지원이 요구되며, 특히 임신·육아로 영양 공급이 부족해 헌혈하지 못하는 여성들에 대한 관심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금전적 보상 대신 의료서비스 혜택을 제공하는 등 헌혈을 통해 생명을 살리고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직장에 다니며 꾸준히 헌혈의집을 찾고 있는 이정일(30대)씨는 “헌혈의 취지를 헤치는 금전적 보상 확대는 지양해야 한다”면서 “폴란드에서는 헌혈 유공자의 의료기관 입원 대기 시간을 줄여주는 서비스 등이 이뤄진다. 헌혈이 의료적 봉사라는 차원에서 우리나라도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도입할만하다”라고 제안했다.
고등학생이 바라는 다회 헌혈자에 대한 예우 방안도 제시됐다. 이승빈(18)군은 헌혈 기록이 대학 입학시험에 반영되길 바랐다. 이군은 “올해부터 헌혈 사례가 대입에 반영되지 않아서 헌혈에 참여하지 않겠단 친구들이 늘었다”면서 “헌혈증서는 객관적인 증빙이 가능하고 다른 봉사활동보다 값진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헌혈자의 예우를 보장하기 위해 헌혈 유공자 명패 제작, 다회 헌혈자 대상 문화행사 및 간담회 등을 시행할 예정이다. 강재희 보건복지부 혈액장기정책과 사무관은 “혈액관리법 개정에 따라 올해 헌혈자 예우 강화를 위한 사업이 신규 반영돼 예산 1억원을 확보했다”라며 “정부 관계자가 다회 헌혈자의 집을 방문해 명패를 수여하고 서울, 부산, 대전에서 각 1회씩 간담회를 개최해 헌혈 증진 방안을 청취하면서 정책에 반영하겠다”라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