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파업으로 인해 심한 대기 지연이 예상되오니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11일 서울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안내창구 모니터에 ‘대기 지연’을 알리는 글이 붙었다. 안내창구 앞에는 6~7명이 환자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노조가 총파업에 나서며 직원들이 평소보다 줄었기 때문이다.
이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서울시보라매병원 노동조합(서울대병원 노조)이 의료 공공성 강화와 실질임금 인상, 인력 충원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의사를 제외한 서울대병원과 서울시보라매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의료기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파업이 발동되며 검사 등 일부 업무가 지연됐고 환자와 방문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이날 오전 기자가 찾은 서울대병원 본관 로비 원무창구는 환자들로 붐벼 혼란스러웠다. 앉을 자리가 없어 서있거나 기둥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은 환자도 있었다.
긴 대기시간에 지쳐 언성을 높이고 삿대질을 하며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환자도 보였다. 한 방문객은 “이게 다 파업 때문이야, 파업 때문”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정신질환을 앓는 아들을 데리고 1년 동안 병원을 찾고 있는 김모(50대)씨는 “진료를 받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면서도 “병원이 이렇게 혼란스러운 건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진료를 마치고 수납을 기다리던 박모(50)씨도 “약만 타면 돼서 진료 시간은 짧았지만 환자가 너무 많아서 오래 기다렸다”며 “파업이 노동자의 권리라 하지만 이익 관철을 위해 환자를 이렇게 힘들게 해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에 근무하는 필수 인력은 그대로 유지돼 파업으로 인한 진료 차질은 크게 빚어지진 않았지만, 의료진의 부담은 가중됐다. 박정호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은 그대로 운영됐는데 입원이 거의 안 돼서 환자 수용이 정체됐다”며 “응급실 의료진 부담도 늘어났다”고 전했다.
파업에 참여한 간호사들은 한목소리로 ‘인력 충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간호사 1명당 일반병상 환자 14명, 중환자실 3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고,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는 신생아 5명을 돌보는 등 인력에 비해 챙기는 환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노조는 중환자실 간호사 대 환자의 비율을 1대 2로 만들고, 주간과 야간에 간호사 수를 동일하게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병동에서 근무하는 4년차 간호사 A씨는 “간호 인력 보충이 시급하다. 담당하는 환자는 많고 업무는 힘들어서 간호사 사직률이 높다”며 “평균적으로 간호사 1명당 환자 11명을 보고 있고, 환자가 많은 병동은 간호사 1명이 17명의 환자를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서영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상임활동가는 “후진적인 인력 기준으로 노동자들을 갈아 넣고 있고 간병노동자 역시 안정적인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을 모든 병동으로 확대하고 간병노동자와 돌봄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 노조가 병원 측과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진료 차질이 장기화할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노조는 조합원 3800명 중 필수 유지 인력을 제외한 하루 평균 1000여명 정도가 번갈아 파업에 참여할 계획이다. 노조는 인력 충원, 처우 개선 이외에도 △감염병 종합대책 수립 △의사 성과급제 폐지 △임금 인상 △어린이병원 병상 유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국민들은 건강보험 보장성이 줄어들어 늘어난 병원비 걱정에 시름하고, 인력을 늘려 병원 노동자와 환자 모두 안전한 일터를 마련하라는 노동자들의 당연한 요구를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며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파업을 이어나가겠단 의지를 재확인했다.
서울대병원은 진료를 가능한 한 정상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단 입장이다. 서울대병원은 본관에 김영태 원장 명의의 ‘환자 및 보호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 대자보를 붙여 노조의 파업 소식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김 원장은 “노조의 파업 기간 동안 가능한 모든 인력과 수단을 동원해 불편을 최소화하고 진료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향후 교섭에도 성실히 임해 진료 공백을 신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