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맑아졌어요”…‘금욕상자’로 중독 극복하는 청년들

“정신 맑아졌어요”…‘금욕상자’로 중독 극복하는 청년들

기사승인 2023-11-29 11:00:06
마우스를 두 시간 동안 금욕상자에 넣은 동료 기자의 모습. 사진=이예솔 기자

# 주로 집에서 근무하는 프리랜서 진홍백(30)씨는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금욕상자’에 휴대전화를 넣는다. 하루 평균 10시간에 가까웠던 휴대전화 이용 시간을 줄이기 위해 온라인에서 금욕상자를 구매했다. 진씨는 “도파민 중독 증상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는 거라고 한다”라며 “이 증상들이 나타나서 금욕상자를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 ‘금욕상자’를 이용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담배, 신용카드 등 스스로 절제가 필요한 물품을 정해둔 시간 동안 봉인해 거리를 두는 것이다.

한 온라인 쇼핑몰에 금욕상자를 검색하면 1800여개 상품이 등장한다. 가격은 5000원부터 7만원까지 다양하다. 1분에서 최대 10일까지 잠금 설정을 할 수 있고, 그 전에 열고 싶으면 상자를 망치로 부숴야 한다.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지난 8월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작곡가 코드 쿤스트가 스마트폰 중독 탈출을 결심하고 10시간 동안 휴대전화를 금욕상자에 봉인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다.

금욕상자를 직접 구매해 휴대전화를 2시간 동안 넣어 뒀다. 처음엔 금욕상자에 갇힌 휴대전화를 보면서 누군가 급한 연락을 했을 것 같아 불안해졌다. SNS를 볼 수 없으니 지루하고 답답해졌다. 2~3시간씩 휴대전화를 가두는 일을 반복하자, 점차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해방감이 느껴졌다. 창밖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노을이 보였다. 욕구가 죽고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구매자 대부분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매를 결심했다. 직장인 배수정(30)씨는 “스마트폰 안 보면서 잠드는 것에 도전했다”며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진씨 역시 “휴대전화로 쓸데없는 정보를 자꾸 접하게 되고, 해야 할 일을 못 해서 무기력함까지 느꼈다”며 “금욕상자를 통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금욕상자 사용 전과 후 휴대전화 스크린타임 시간을 비교해 봤다. 사진=이예솔 기자

금욕상자를 사용하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으로 받아들였다. 배씨는 “책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스마트폰 너머 사람들이 내가 붙들릴 수밖에 없게 설계해 뒀다는 내용이 있다. 이기기 쉽지 않다”며 “건강한 습관을 들이지 못해 자책할 필요 없이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방법을 택했다”고 금욕상자를 이용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수험생 집중력 향상을 위해 부모들이 구매하는 경우도 많았다. 두 아이를 위해 금욕상자를 구매한 이모(50)씨는 “아이들이 자율 학습을 하겠다고 해서 구매했다”며 “스마트폰과 불량식품을 넣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자기주도적인 행동이 아니면 아이가 벌처럼 느끼면서 슬퍼하더라”라며 “합의를 거친 후 사용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지난해 9~11월 1만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은 23.6%로 조사됐다. 국민 4명 중 거의 1명꼴로 스마트폰 의존이 심하다는 얘기다. 스마트폰 과의존은 과도한 스마트폰 이용으로 자율적 조절 능력이 떨어져 신체·심리·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경험함에도 이를 지속해서 이용하는 행태를 말한다.

전문가는 금욕상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금욕상자가 일시적인 효과는 가져올 것”이라면서도 “금욕상자에 계속 의존하면 그것 없이 통제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의존을 가져오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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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olzz6@kukinews.com
이예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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