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이색 크리스마스 트리가 인기를 얻고 있다. 평범한 초록색 침엽수 트리 대신, 저렴하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독특한 트리들이 SNS를 물들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트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청년들은 구매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자취생 박모(30대)씨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려면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혼자 월세방에 사는 나에겐 그럴 여유가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한 쇼핑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팔린 트리를 찾아보니 크기는 150㎝, 가격은 15만원 정도였다. 각종 오너먼트와 전구를 추가하면 22만원이 훌쩍 넘는다. 해당 트리는 주문량이 폭주해 이미 품절된 상태다.
최근엔 좁은 공간에서도 만들 수 있는 저렴한 트리가 유행하고 있다. 표지가 울퉁불퉁한 500ml 물병을 세워놓은 뒤 불을 끄고 벽을 향해 플래시를 켜면 트리 모양이 만들어지는 ‘물병 트리’가 대표적이다. 최근 SNS와 유튜브에는 ‘천원으로 크리스마스 느낌 내기’ 등의 제목으로 물병 트리 만드는 방법과 인증사진이 다수 올라와 있다. 책을 쌓아 올려 ‘북트리’를 만들거나, 자취방에 남은 술병으로 ‘술트리’를 만들기도 한다.
겨울 과일인 귤도 크리스마스 트리로 다시 태어났다. 15일 한 SNS에 ‘귤트리’를 검색하니 500개 이상의 게시글이 나왔다. 귤트리는 귤껍질을 뜯어 몸통 위에 쌓아 올려 트리 형태로 만든 걸 뜻한다. 최근 귤트리를 직접 만들었다는 박씨는 “그동안 방이 작아서 트리를 꾸밀 생각조차 못 했다. 어릴 때 이후 처음 만든 트리”라며 “일회성 이벤트로 사고 버리는 것보다, 가진 걸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게 더 좋다”라고 만족스러워 했다. 임지은(38)씨도 “귀여운 트리를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벽에 장식품을 걸어 꾸미는 ‘벽꾸’로 만드는 트리도 인기다. 대학생 최모(24)씨는 “정해진 모양의 트리보다 내가 원하는 모양의 트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벽꾸 트리의 장점”이라며 “대형 트리를 사는 것보다 비용도 많이 절감된다”고 말했다. A(20대)씨는 최근 회사 사무실 벽에 부직포로 만든 트리를 걸어놓고 지나가던 직원이 자유롭게 꾸밀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업무로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에 조금이나마 유쾌함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저렴하게 이색 트리를 만드는 문화에 대해 청년들이 현실적인 요건을 고려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청년들 스스로 현실과 타협한 것”이라며 “경제적 여력이 있으면 집이나 트리를 꾸미는 인테리어에 지금보다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과거엔 즐기는 문화가 일방향으로 보는 것 정도에 그쳤다면, 이젠 직접 참여해서 경험하는 흐름으로 바뀌었다”며 “이런 활동들을 통해 인정욕구도 채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