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돌봄’ 최전선인데…간병비 급여화 두고 요양병원·기관 갈등

‘어르신 돌봄’ 최전선인데…간병비 급여화 두고 요양병원·기관 갈등

기사승인 2024-01-08 13:00:03
빈 병실 모습. 쿠키뉴스 자료사진


오는 7월부터 ‘요양병원 간병비 지원 시범사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를 두고 어르신 돌봄 최전선에 선 요양병원과 장기요양기관 간 갈등이 커질 조짐을 보이자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간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원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요양병원과 과잉의료에 따른 재정 낭비를 불러올 것이라는 요양기관의 입장이 엇갈리면서다.

8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연말 정부는 ‘간병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간병 부담 경감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등이 환자에게 간병을 포함한 입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인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와 함께 개인이 전액 부담하는 요양병원 입원의 간병비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간병비 급여화’가 담겼다. 복지부는 오는 7월부터 요양병원 10곳에 대한 간병비 지원 1단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단계적 확대를 거쳐 2027년부터 전국에 적용되는 본사업에 들어간단 계획이다.

이는 ‘간병 파산’, ‘간병 지옥’을 넘어 ‘간병 살인’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비극적인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간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꺼내든 대책이다. 간병하던 가족을 살해하는 간병 살인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7월 희귀병에 걸린 아내를 3년간 간병하다 살해한 60대 남편이 체포됐고, 지난해 10월엔 1급 뇌병변 장애가 있는 아들을 돌보다 살해한 죄로 60대 아버지가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사적 간병비 규모는 매해 증가해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김진현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팀의 ‘사적 간병비 규모 추계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정책적 시사점’ 자료에 따르면, 간병인을 쓰는 유급 간병률과 가족 간병률 등을 합친 사적 간병률은 2018년 기준 61.2%다. 국가 차원의 지원이 부재하다 보니 간병 난이도가 높은 중증 환자일수록 사적 간병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실이다. 상급종합병원(75.3%)과 요양병원(74.8%)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간병 도우미료도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코로나19 유행 이전에 하루 7~9만원 수준이었던 비용이 지금은 12~15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간병비 지원 대상자는 요양병원 입원환자 5단계 분류체계 중 의료최고도와 의료고도이면서 장기요양 1·2등급에 해당하는 환자로 엄격히 제한된다. 또 중증도에 따라 차등 지원해 고도 환자는 180일까지, 최고도 환자는 기본 180일까지 제공한 뒤 이후엔 본인부담률을 매달 10%p씩 인상한단 계획이다.

“연간 1~2조원 소요 예상…본사업 조기 시행해야”

문제는 재정이다. 복지부 추산에 따르면 간병비 지원에 소요될 예상 재원 규모는 연간 최대 15조원이다. 적게 잡아도 최소 10조원이 든다. 그러나 요양병원계는 시범사업 설계대로라면 간병비 지원에 연간 1~2조원의 재원만 있으면 된다며, 2027년으로 예정된 본사업 시행을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3일 대한요양병원협회가 주관한 ‘간병 급여화 본사업 조기 실시를 위한 토론회’에서 임선재 협회 부회장은 10조원대 추정 금액은 억측이라고 선을 그었다. 임 부회장은 “본인부담률을 20%로 높이고 간병인력 기준과 교대근무별 급여비를 조정하면 전국 요양병원으로 지원을 확대해도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최소 1조2000억원에서 최대 1조8000억원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임 부회장은 “재원이 예상보다 적게 소요된다면 본사업을 조기에 실시할 수 없는지 정부가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며 “재원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장기요양기관과의 갈등이 초래돼선 안 된다”고 경계했다.

혜택을 받는 환자와 가족이 제한적일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이요한 고려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의료 최고도·고도이면서 장기요양 1·2등급 환자는 전체 요양병원 입원 환자의 5% 정도만 해당될 것”이라면서 “이렇게 대상자를 한정해 간병비 부담 경감이라는 정부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요양병원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 환자와 가족들은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간병 때문에 요양병원을 택한다”며 “지역사회 돌봄 역량 등이 확충되지 않는 한 간병 문제는 존속될 것”이라고 짚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강화 및 환자분류체계 개선 먼저”

반면 장기요양기관들은 간병 급여화를 전면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강화하고,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간 의뢰와 회송이 원활하도록 양 기관의 기능부터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대적으로 건강한 노인이 요양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는 상황도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노인복지중앙회에 따르면, 1~5등급의 장기요양 등급을 받고도 장기요양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노인 14만5000명 중 32.6%(4만7000명), 3등급 이하 판정자 12만1000명의 24.7%(3만명)가 요양병원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권태협 노인복지중앙회 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간병 급여화는 올바른 방향이다. 다만 장기요양 1·2등급의 중증 환자가 요양병원이 아닌 요양원에 가고, 상대적으로 경증인 환자들이 요양병원에 장기간 입원하는 환자분류체계를 고치지 않는 이상 재정만 소요되고 간병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요양병원은 아픈 환자를 돌보는 기관, 요양시설은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보살피는 기관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요양병원의 반대가 요양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린 서로를 적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두 기관 모두 국민 편익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며 “양 기관이 틀 안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게 하려면 결국 복지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5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 성애병원을 찾아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에 근무하는 종사자들을 격려하고 간병비 부담 경감방안에 대한 현장 의견을 청취했다. 보건복지부


복지부, 건강보험 재정 악화 부담…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덜면서 간병비 급여화의 적정선을 찾기 위한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전망이다. 복지부는 본사업 시행을 앞당겨야 한단 요양병원계의 요구에 대해선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했다.

임강섭 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3일 토론회에서 “요양병원 체계, 간병 인력, 서비스 내용에 대한 전반적인 향상과 질 관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현재 요양병원 병상 수는 과잉되고 입원환자가 너무 많다. 요양병원은 숙박시설이 아니다.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곳에 간병비가 지원돼야 요양병원도 살고 간병비 부담도 줄 것”이라고 피력했다.

복지부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지난해 9월 기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은 699개소로 총 7만5293개 병상이 있다. 중증 수술 환자, 치매·섬망 환자 등을 전담 관리하는 중증 환자 전담병실이 올 7월 도입되고, 간호조무사 인력이 최대 3.3배 확대 배치될 예정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5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 성애의료재단 성애병원을 방문해 “중증 환자부터 간병 걱정 없이 병원에 안심하고 입원할 수 있도록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전면 개편할 계획”이라며 “국민들의 간병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착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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