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지방자치단체와 대학들의 의과대학 신설 추진 바람이 불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90여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 맞물리며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역과 정치권의 의대 설립 요구는 높아질 전망이다.
9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북 포항, 경기 안성, 경남 창원, 전남 광주 등이 각 지역에 의대 설립이 필요하단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역의 중증·필수의료를 전담할 의료기관과 인력이 부족하단 이유에서다.
먼저 포항시는 지난해 11월27일부터 12월31일까지 ‘포스텍 의과대학 신설 서명 운동’을 전개해 지역민들의 높은 의대 신설 요구를 확인했다. 서명 운동에 30만5803명이 동참해 당초 목표인 20만명에서 153% 초과 달성했다. 포항시는 대통령실,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에 서명지를 전달할 계획이다.
지역에 의대가 없는 포항시는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에 ‘연구중심의대’를 세워 의사과학자(MD-PhD)를 양성하겠단 목표다. 경북 지역 의대는 대구가톨릭대(경산), 영남대(경산), 동국대 경주캠퍼스(경주) 등이 있다. 포스텍이 설립하려는 연구중심의대는 입학 정원 50명인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의사과학자 과정까지 개설해 8년 교육 과정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900병상 규모 부속병원 설립도 함께 추진한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은 지난 5월 ‘포스텍 연구중심 의과대학 설립 실행전략 수립 용역 중간보고회’에서 “포스텍 연구중심의대와 병원이 설립된다면 포스텍의 특화 분야인 예측의학, 맞춤형 신약 개발, 재생의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바이오 융합인재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시도 지역 의대 설립 서명지와 청원서를 정부에 전달하고 캠페인과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등 의대 신설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지역민들의 요구도 높다. 경남도가 지난해 10월28일부터 11월2일까지 도민 1014명을 대상으로 의사 인력 확충 관련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88.5%가 의대 정원 확대나 신설로 의사 인력이 증가하면 의료서비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이 중 90%가 경상국립대 의대 정원 확대, 84.4%는 창원시 의대 신설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총선 시즌과 맞물려 의대 신설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와 만나 안성시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한경국립대 의대 신설 추진방안을 논의했다. 최 의원은 ‘한경국립대 의과대학 설치 특별법’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최 의원의 지역구인 안성시는 경기 수도권이지만 도시지역(동)과 농촌지역(읍·면)이 통합된 형태의 도농복합지역에 속한다. 안성시에서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를 넘고, 일부 지역은 40%에 육박하지만 관내 의료 이용률은 저조하단 게 최 의원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안성시 관내 의료 이용률은 정신건강의학과 1.4%, 소아과 11.6%, 외과 11.9%, 내과 19.6%에 불과하다. 재활의학과와 산부인과는 0%에 그쳤다. 최 의원은 “한경국립대에서 배출된 의사들이 안성시뿐 아니라 경기도 내 의료 취약지역에서 복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교수는 “안성시 뿐 아니라 경기 북부 지역과 여주, 이천 등 보건의료 취약지가 상당수 존재하는데 수도권으로 묶여 보건의료 인프라가 포화상태인 것처럼 평가받아온 측면이 있다”면서 “경기도 지역별 의료취약 분야와 부족한 의사 인원을 면밀히 추계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방의회의원들도 지역 의대 신설에 힘을 싣고 있다. 광주광역시의회와 전라남도의회는 지난달 14일 전남권 국립의대 신설과 지역의사제 도입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시·도의회 의원들은 “매번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와 한계에 치달은 소아과 의료 대란은 광주·전남 지역 필수의료 붕괴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며 “열악한 지역의료 인프라 개선을 위해 전남권 의대는 반드시 신설돼야 한다”고 밝혔다.
지자체의 의대 신설 의지는 확고하지만 의료계의 반발을 넘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의료계·의학교육계에선 이미 의대가 충분하고, 서남의대 사례처럼 기본도 갖추지 못한 의대가 넘칠 것이라며 추가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 서남의대는 지난 2018년 폐교했다. 당시 서남의대 재학생들은 전북의대와 원광의대로 편입학해야 했다.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정책연구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국가가 사립의대에 투자하는 비용은 거의 한 푼도 없는 상황에서 의대를 또 짓겠단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의대생들조차 지역·필수의료를 외면하는 현실에서 국가와 지자체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부터 돌이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대만 만들어 놓는다고 다가 아니다. 병리학, 생리학, 약리학 등 기초의학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가 부족한 곳이 태반”이라며 “인력, 시설, 장비, 부속병원 등 충분한 교육 인프라를 확보하지 않는 이상 의대 신설은 서남의대 같은 부실의대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이달 중으로 구체적인 의대 입학 증원 규모를 담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할 계획이다. 앞서 복지부 의학교육점검반은 각 의대가 제출한 희망 증원 규모에 대한 현장조사를 지난달 말 마쳤다. 전국 40개 의대가 제출한 2025학년도 희망 증원 규모는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이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