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마약유통·폭행…의료인 강력범죄 근본 해결책 없나

성범죄·마약유통·폭행…의료인 강력범죄 근본 해결책 없나

최근 5년간 성범죄 저지른 의사 793명…연평균 159명꼴
면허 취소 의사 300명 중 42% 재교부
규제 강화됐지만 사각지대 여전…면허 정지되고도 진료
“강력한 교육과 철저한 모니터링 필요”

기사승인 2024-01-12 11:00:02
약물에 취해 차를 몰다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운전자에게 마약류를 처방한 40대 의사가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은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마약류 의약품 유통, 특수폭행, 성범죄까지. 의료인 강력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범죄 종류의 구분 없이 면허가 취소되는 법도 만들어졌지만 실효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의과대학생 때부터 관련 교육을 강화하고, 의료계의 강도 높은 자정 노력이 없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단 지적이 나온다.

“범죄 실행에 의사의 직위를 잘 활용했다.” 지난달 27일 약물에 취해 차를 몰다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이른바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운전자에게 마약류를 제공한 40대 의사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마약류를 처방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병원에서 10여명의 마취 환자를 성폭행하고 불법 촬영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 공분을 샀고 결국 구속됐다.

11일 경찰당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성범죄로 검거된 의사는 800명에 이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8~2022년 사이 의사(한의사·치과의사 포함) 793명이 성범죄를 저질러 검거됐다. 성범죄 유형별로 ‘강간·강제추행’이 689명(86.9%)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로는 ‘불법촬영’ 80명(10.1%), ‘통신매체 이용 음란행위’ 19건(2.4%), ‘성적 목적 공공장소 침입’ 5명(0.6%) 순이었다. 연도별로 △2018년 163명 △2019년 147명 △2020년 155명 △2021년 168명 △2022년 160명의 의사가 성범죄를 저질렀다. 연평균 159명꼴이다.

범죄 수준에 비해 제재는 미약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23년 6월 말까지 면허가 취소된 의사는 300명이다. 이 중 42%인 126명이 재교부를 받았다. 지난해 초에는 한 대학병원 교수가 전공의와 간호사 등 10여명을 상습 성추행·성희롱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해당 교수는 5개월의 정직 처분을 받고 지난 9월 복직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의료법 위반으로 이미 면허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몰래 비급여 진료를 계속하다 적발된 사례도 부지기수다. 복지부에 따르면 의사 264명이 면허자격이 정지된 채로 3596건의 마약류 의약품을 투약하거나 처방했다. 한 한의사는 면허 정지 기간에 무려 1469건의 의료 행위를 하기도 했다. 정부의 대처도 아쉬웠다. 복지부는 2018년 이후 총 24건의 의료법 위반사항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처분시효가 지나자 이를 사유로 내부종결 처리한 게 확인돼 감사원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잇따른 의료인의 일탈에 제도 개선도 여럿 이뤄졌다. 지난해 4월 의료인이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면허가 취소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돼 1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같은 해 9월부턴 의식이 없는 환자를 수술하는 의료기관에 CCTV 설치가 의무화됐다. 대리 수술이나 성범죄 등 불법행위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에서다. 성범죄 등 강력범죄를 저질러 면허가 취소된 의료인이 면허를 재발급 받으려면 의료인 윤리 관련 교육을 40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법도 마련됐다.

이처럼 국회와 정부가 규제에 나섰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환자 피해는 여전할 것이란 우려가 이어진다.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정책연구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막연하게 양심과 이타심을 가진 의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해선 예비 의료인의 윤리의식과 도덕성이 크게 높아지지 않는다”며 “법에 위촉되는 문제를 일으켰을 때 어떤 처벌을 받는지 하나하나 사례를 소개한 교재를 통해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성폭력에 대한 교육은 많이 시행되고 있지만, 마약류 처방과 사용에 관한 교육은 미약한 상황이다. 이 소장은 “의사들이 환자에게 마약류를 처방해 생기는 문제도 있지만, 병원에서 마약류를 상시 다루다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빠지는 의사가 중독되는 경우도 많다”며 “마약류 사고가 높은 진료과는 마약에 대한 강력한 교육과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의대를 졸업하고 막대한 돈을 투자해 병원을 개업했지만 경영이 어려워지자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소장은 “무한 경쟁 속에서 경영 부진을 겪는 의사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면서 “의대생 때부터 의사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과 함께 경영인의 자세를 기르기 위한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단체가 의사면허 관리 권한을 넘겨받아 자율 규제를 강화해야 한단 목소리도 있다. 문지호 의료윤리연구회 회장은 “자율 징계권 강화를 위해 의사단체가 면허를 정지시키고 규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며 “정부에 있는 의사의 면허관리 권한이 이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자율정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의사들의 품위손상 행위와 의료윤리 위배행위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의료계 자정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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