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예금자보호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지난해 현행유지로 가닥이 잡혔던 보호한도 상향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금융계에서는 예금자보호한도 논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정치권이 이를 선거용으로 소비하는 점은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당시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에 대해 “경제 규모가 커진 것에 비해 한도가 작다는 점, 대출금리에 비해 이자금리에 대한 경쟁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예금자보호한도 23년째 제자리…선진국은 대부분 1억원 넘어
예금자보호한도는 예금자보호제도에 따라 금융사가 영업정지 혹은 파산하게 됐을때, 예금보험공사가 금융사 대신 5000만원까지 보호하는 법적 제도다.
예금자보호한도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현행 예금자 보호한도 5000만원은 지난 2001년부터 23년째 그대로다. 1인당 GDP와 경제적 상황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도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1인당 GDP 대비 예금자 보호한도 비율은 지난해 기준 1.2배로 미국(3.3배)과 영국(2.3배), 일본(2.3배) 등 주요국 대비 적다. 주요 선진국의 예금자 보호 한도는 미국 25만 달러를 비롯해 유럽(EU) 10만 유로, 영국 8만5000파운드, 일본 1000만엔 등 대부분 1억원을 넘는다.
특히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23년째 고정된 예금자 보호 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정치권에서도 발의가 잇따랐다. 21대 국회에 예금자 보호 확대 취지의 개정안도 무려 11건이 발의됐다. 보호 한도를 1억원~2억원까지 높이는 내용이다.
“2금융권으로 자금 이동” 금융당국·민관 TF도 부정적
반대측에서는 이미 기존 한도로 98%의 소비자가 보호받고, 상향 시 오히려 금융소비자 부담만 커진다고 본다.
금융위가 예금보험공사에 맡긴 연구 용역에서는 한도를 올리면 자금이 은행에서 더 금리가 높은 2금융권으로 이동하고, 저축은행 업권 내 과도한 수신 경쟁이 벌어져 일부 소형사에 충격이 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도 상향 시 보호한도 내 예금자 비율은 98.1%에서 99.3%로 단 1.2%p 증가하는 데 그쳐 상향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담겼다. 결국 고액 예금자와 저축은행만 이득을 보는 구조라는 것이다.
또 예금보험료 인상으로 소비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금보험공사는 보호기금 조성을 위해 각 금융사 예금 잔액의 0.08~0.4%를 보험료로 걷는데, 보호 한도를 높이면 금융사가 내야 하는 보험료도 높아진다. 이는 결국 대출금리 인상 등 금융 소비자에 전가될 수 있다는 논리다.
금융위는 2022년 3월 예금보험공사, 금융업권, 민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예금보험제도를 논의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국회에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논의 필요한 건 맞지만…시점 아쉽다”
금융위는 국민의힘과 사전 논의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향후 국회법안 심사 과정에서 찬성·반대논리와 시장상황을 종합 고려해 합리적 방안을 강구해나갈 것”이라며 “국민의힘과 보조를 맞춰 논의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시점 때문에 포퓰리즘이라는 오해를 살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생산적 논의로 흘러가기 전에 야당 반대에 맞닥뜨려 좌초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예금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올리면 현재 시중은행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 서 교수는 “한도를 높이면 한국의 낮은 예적금률을 올릴 수 있고, 저축은행 경쟁력을 올려 은행 독과점을 줄일 수 있다”며 “금융당국이 연구 용역을 맡기는 예금보험공사나 한국금융연구원은 은행 입김이 크다. 객관적인 연구 결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 “한도 상향 논의를 꼭 지금 얘기했어야 했나 싶다”고 지적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