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추진에 반발해 의사단체들이 집단행동을 예고한 가운데 환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진다. 지난 2020년 의대 증원을 추진했을 당시에도 전공의를 비롯해 의사들이 집단 휴진에 대거 동참하면서 진료와 수술이 축소되는 등 환자 불편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1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설 연휴 첫날인 지난 9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 주재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를 열고 의사들의 집단행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가 지난 6일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의료계가 집단행동을 불사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서울아산병원 등 수도권 대형병원 인턴과 레지던트(전공의)들은 설 이후 단체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미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중에서 서울성모병원을 제외한 4곳의 전공의들이 파업에 참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협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오는 12일 온라인으로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어 의대 증원 등 의료현안 대응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지난 5일 대전협은 수련병원 140여곳, 전공의 1만여명을 대상으로 ‘의대 증원 시 단체 행동에 참여하겠느냐’를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88.2%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빅5 병원 전공의들의 참여율은 86.5%로 나타났다.
정부가 면허 취소까지 거론하며 단체행동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히자 의협은 정부와의 투쟁이 시작됐다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단체행동 초읽기에 들어갔다. 박성민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이날 회원 대상 담화문을 내고 “정부는 연일 갖은 협박 수단을 동원해 정당하게 자신의 자유 의지로 행동하는 회원을 위협하고, 면허 취소 등을 언급하며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붓고 있다”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의료계의 미래인 의대생과 전공의를 보호하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고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끝까지 노력하자”고 말했다.
인턴과 레지던트들의 의협 집단행동 참여 여부가 파급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당직 업무 등을 주로 맡는 전공의들이 진료 거부에 나서면 일선 의료 공백은 불가피하다. 지난 2020년 의대 증원을 추진했을 당시에도 전체 전공의의 80% 이상이 집단 휴진에 참여하면서 의료현장 곳곳에 공백이 발생했다. 주요 병원들은 진료와 수술이 축소되는 등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기도 했다. 집단 휴진이 장기화할수록 응급실, 중환자실 입원마저 막히면서 진료 대란이 일어날 수 있고 전임의, 교수들의 연쇄 이탈로도 이어질 수 있다.
환자들의 불안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의료계가 생명이 경각에 달린 중증환자들의 치료를 중단하고 밖으로 나가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하고자 극단적인 파업을 통해 의료 공백을 야기한다면 우리 환자단체들은 묵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지난 6일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한국루게릭연맹회, 한국폐섬유화환우회, 한국췌장암환우회 등 환자단체들도 공동성명을 통해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현재 왜곡된 의료현장에서 피해를 감내하고 있던 온 국민의 염원이자 환자의 생명, 안전과 관련된 정책이므로 어떤 이익집단과도 양보와 타협은 있을 수 없음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번 의대 입학 정원 확대와 관련해 일부 이익집단의 강경한 태세로 발생하게 될 의료 공백이나 중증질환자들의 치료권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의료시스템과 자원을 동원해 만전을 기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 움직임에 강력한 대응 채비에 들어갔다. 전공의 등이 단체행동에 나서면 법적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강경한 태도다. 의료법 제59조에 따르면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 휴업해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면 복지부 장관이나 지자체장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복지부는 일부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 제출을 검토함에 따라 각 수련병원에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내렸다.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단체·인사에 대해서는 시·도경찰청이 직접 수사할 예정이다. 출석에 불응하면 체포영장까지 발부받아 추적·검거할 방침이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지난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정부는 법에 규정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범정부 대응을 추진하겠다”면서도 “불합리한 의료제도는 의료계와 함께 논의하며 과감한 개혁을 통해 바꿔가겠다”고 의사단체들을 달랬다. 이어 “일부 집단행동 움직임에 동요하지 말고 지금과 같이 환자의 곁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