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다소 주춤한 국내 철강업계가 누적 손실 방지를 위해 원재료 인상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중국·일본에서 유입되는 저가 철강재로 역효과가 우려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형 철강사는 반덤핑 제소를 검토 중이나, 이마저도 후방업계의 타격이 우려돼 속시원히 추진되지 못하는 모양새다. 업황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업계 내부의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열연 제품의 1월 계약분을 톤당 5만원 인상해 적용했고 이달엔 유통향 열연 제품 가격도 톤당 5만원 인상할 예정이다.
현대제철 역시 1월 열연·후판 가격을 톤당 5만원 인상했고 이달 열연 제품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다. 두 기업 모두 열연 외 제품에 대한 가격 인상을 상반기 동안 진행할 계획이다.
국산보다 5~10% 싼 중국·일본산 철강재의 저가 공습으로 지난해 열연강판 수입량이 전년(339만톤) 대비 24.5% 증가한 422만톤을 기록하는 등 가격 인상이 쉽지 않은 상황임을 알고 있지만, 국내 철강업계는 지난해 원자재값 상승분을 반영해 주춤했던 실적을 반등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포스코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77조1270억원, 영업이익 3조5310억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9%, 27.2% 감소했으며, 현대제철은 같은 기간 매출 25조9148억원, 영업이익 8073억원으로 각각 5.2%, 50.1% 감소했다.
수익성 회복이 시급한 주요 철강기업은 수입 제품에 세금을 부과해 국내 산업을 보호하겠다며 반덤핑 관세 부과 제소를 검토 중이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달 31일 2023년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반덤핑 제소 검토와 관련해 “하나의 가능한 수단으로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수입 급증 영향,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추세 등을 고려하면 열연 등 철강 기초제품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를 검토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수입재 범람으로 인한 국내 산업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밝혔다.
다만 중견·중소 제강사의 상황은 다소 애매하다. 이들은 고로를 보유한 철강사로부터 철강재를 사들여와 후공정한 제품을 판매하는 구조인데 저가의 수입재에 반덤핑 관세가 부과될 경우 원가 비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는 “열연 제품에 대한 가격 선택지가 줄어들면 중견·중소 제강사들은 결국 상승하는 원가를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사실상 독점 품목 소재에 해당하기 때문에 덤핑 대상으로 분류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내수뿐만 아니라 수출에 있어서도 원가 상승이 반영된 제품으로 해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협회나 정부기관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호소한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동종업계에 있어 서로 이러한 부분에 대해 얘기하기 어려운 구조이지만 협회나 정부기관이 이 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취합하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런 점이 부족해 아쉽다”면서 “주요 철강사의 입지가 크다보니 협회가 눈치를 보는 것 같다는 의견도 종종 들린다”고 말했다.
한국철강협회 측은 “협회는 후판, 형강 등 건설용 강재의 불공정 수입에 대응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업계간 회의를 통해 협력 및 노력하고 있다”면서 “통상임원회의를 주기적으로 개최해 철강재 수출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중론을 제시하며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재윤 연구위원은 “2021년 스테인리스 평판압연제품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를 결정할 당시에도 중국과의 관계, 수요 중소기업 영향 등이 고려됐었지만 관세 부과의 필요성이 높다고 판단돼 최종 부과 결정됐었던 만큼 이번에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우리가 철강 원부자재를 상당부분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에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 업계 질서 또한 고려돼야 하기에 결국은 산업보호로 발생한 이득(=손실규모의 축소)을 철강사와 제강사가 일정부분 공유할 수 있는 업계 차원의 협력이 중요하다”면서 “철강사가 내수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고 기술교류, 국내 시장 적기 공급 등의 노력을 보여주며 제도를 정교히 디자인 할 경우 윈윈의 방안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