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분야 고위공직자 자리가 서울대와 정통 관료 출신 인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이 한국거래소 제8대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신임 이사장은 15일 부산 거래소 본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기업은 효율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자는 공정한 수익 기회를 얻으며, 경제의 새로운 성장을 견인하는 자본시장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정 이사장은 후보 모집 때부터 차기 이사장 낙점 가능성이 높다는 평을 들었다. 정 이사장은 경북 청송 출신으로 서울대에서 경제학과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기도 하다, 1984년 행정고시(28회)에 합격해 재정경제부 경제분석과장, 보험제도과장, 금융정책과장을 거쳤다.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관, 차관보에 이어 2016~2017년 증권선물위원장, 2021~2022년 금융감독원장을 역임했다.
경제 컨트롤타워 ‘F4’, 모두 서울대…3명이 서울대 경제학과
현 금융당국 수장들은 서울대 혹은 기재부 출신이라는 공통분모로 서로 묶여있다. 경제·금융 수장인 ‘F4(Finance 4)’는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서울대 법학과 졸업 후 행정고시 29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재무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증권제도과장, 금융정책과장 등을 거친 정통 관료 출신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 25회로 재무부를 거쳐 금융위 금융정책국장, 예금보험공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생으로, 비관료 출신이지만 지난 2008∼2009년 금융위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검찰 출신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유관기관 상황도 비슷하다. 이윤수 금융정보분석원장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금융위 금융시장분석과장, 보험과장, 중소금융과장, 은행과장 등을 거쳤다. 유재훈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후 금융위 증권감독과장과 대변인, 기재부 국고국장 등을 역임한 정통 관료 출신이다. 최원목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를 마치고 기재부 재정관리국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최준우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후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금융소비자국 국장 등을 거쳤다. 진승호 한국투자공사 사장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후 재경부, 기재부를 거쳤다.
변화 시도했지만 과거로 회귀…“견제·균형 원리 작동할 지 의문”
한때 개혁 성향 학자를 금융당국 수장으로 앉히며 변화를 꾀했지만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 시대로 회귀하는 모양새다. 일례로 문재인 정부에서는 최흥식·김기식·윤석헌 등 학계 출신을 금감원장으로 기용했다. ‘변호사 채용 특혜 비리’로 전현직 금감원 임원이 재판을 받는 등 문제가 불거지자 민간 출신 기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교수 출신 인사는 키코·사모펀드 사태 처리 과정에서 금융회사들로 하여금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보상하도록 하는 등 소비자 권익을 중시하는 정책을 폈다는 긍정적 평가를 들었다. 동시에 내부 장악에 실패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기재부 출신 관료의 고위공직자 장악은 경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22년 ‘기재부 전면개혁 공동행동’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조사·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장·차관 등 윤석열 정부 고위공직자들 중 기재부 출신 관료는 전체 12%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기부(10%), 산자부(7%) 순이었다. 이들 시민단체는 낙하산·회전문 인사로 기재부 출신 관료가 고위공직을 독점하면 모든 의사결정이 경제 논리에 따라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해 상충, 부정부패도 지적했다.
권오인 경실련 정책국장은 “금융 유관기관 수장들이 기재부 출신으로 채워지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비판 목소리를 내는 등 독립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모피아들의 회전문 인사 문제는 고질적인 문제다. 쉽게 바뀌지 않는다”면서 “선배가 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 있는데 감독 기관인 금융위에서 제대로 감시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다양성 결여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기관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 하에서 굴러가야 한다. 하지만 ‘초록은 동색’이라고 출신 학교·조직 등 비슷한 배경의 사람들이 요직을 장악하면 정책 결정이 객관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며 “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 자칫 밀실정치를 하는 게 아니냐는 국민 우려가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