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병원을 등진 지 7주째, 환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전공의가 떠난 자리를 지켜오던 의대 교수들까지 근무시간 축소에 돌입하면서 진료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격화되는 의정 갈등에 환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의과대학·대학병원 교수들은 이날부터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만 근무하기로 했다.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장기화되며, 남은 의료진들의 피로도가 극심하다는 이유에서다.
전국 의대 교수협의회는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지켜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전국의 수련병원장들에게 발송했다. 전국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1일부로 24시간 연속근무 후 익일 주간 업무 ‘오프’를 원칙으로 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의료공백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대형병원에서 교수들이 해오던 외래진료·수술 축소가 불가피한 탓이다. 항암치료가 지연되거나 진료가 취소되는 사례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아직까지 주 52시간 근무 축소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라면서도 “만약 주 52시간 근무로 줄인다면 진료 축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사실 지금도 많이 줄어서 더 줄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미 병상가동률은 평소보다 크게 떨어진 상태다. 보건복지부의 주차별 입원 통계를 보면 지난달 25~29일 기준 빅5 병원 입원 환자 수는 4754명이다. 이는 파업 전(7893명)에 비해 39.7% 줄어든 수치다. 빅5 병원의 중환자 입원 환자 수도 같은 기간 602명으로, 파업 전(705명)에 비해 24.5% 감소했다.
응급실도 타격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주 52시간으로 축소하면 입원 환자를 지금보다 절반은 줄여야 한다”면서 “지금껏 교수들은 낮에 수술하고 밤에 입원 환자를 봤는데, 주 52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줄이면 응급실 역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원 오는 응급환자들은 대부분 못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환자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수술·입원 지연, 진료 취소·거절 등 건수는 지난달 29일 기준 602건에 달한다.
환자들의 수술은 ‘무기한’ 밀리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오는 7일 간 질환 수술 일정이 잡혀있던 김모(28)씨는 “병원에서 수술 연기 통보를 받았다”면서 “일정을 조율하겠다고만 답하고, 언제 다시 잡힐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막막하다. 환자들은 어떻게 하라고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중증 환자들은 하루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회장은 1일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의대 교수들이 의료현장을 떠난다는 것은 실낱 같은 환자의 목숨을 가지고 겁박하는 것”이라며 “필수의료 담당 교수가 단 한 명이라도 의료 현장을 떠나는 순간 환자의 생명유지 장치는 멈추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이미 지난 한달 반을 공허한 메아리로 시간만 낭비했다. 이번 주부터는 더 많은 환자의 희생과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와 의료계는 강대강 대치를 당장 멈추고 환자 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