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교사로 근무한 김모(52·여)씨는 최근 이사로 지역을 옮기면서 새 일자리를 얻으려 했지만 ‘나이 제한’ 벽에 무너졌다. 김씨는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김씨는 “일을 안하면 내 존재가 작아지고 쓸모 없어지는 것 같다. 사회 일원이 되지 못하는 느낌”이라며 “몸이 아파 더 이상 일하지 못할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다.
퇴직 준비할 틈 없이…오래 일하고 가장 가난한 韓노동자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나이(2022년 기준)는 평균 49.3세, 노동시장에서 퇴장하는 실질 은퇴 나이는 72.3세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이후 일자리를 전전하며 23년을 더 일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66세 이상 한국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2020년 기준)은 40.4%, OECD 평균 14.2%의 3배에 달한다. 한국 근로자들이 오래 일하고 더 가난하다는 것이다. 부양받지 못하거나 혼자 사는 고령자는 노년의 때에 노동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연령 차별’ 때문에 기피 업종으로 밀리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한국 법적 정년은 만 60세. 국민연금을 수급하기까지 길게는 5년을 버텨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수급 연령이 되더라도 국민연금으로 월평균 62만원을 받는다. 정말 기본적인 생활 유지만 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노년 생활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말 기준 65세 이상 노인 중 국민연금을 수급자는 전체 973명 중 51.2%다. 나머지는 그마저도 받지 못하고 생활하고 있다는 의미다. 은퇴 후 사회적 고립감이 커진다는 점도 문제다. 노인 자살률 OECD 1위와도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은퇴 전 성인 10명 중 8명(81.3%, 보험연구원의 ‘소득 크레바스에 대한 인식과 주관적 대비’ 보고서)은 은퇴 후 소득 공백 기간에 대해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만난 신언진 퇴직 교육 강사(이음나눔유니온)는 “은퇴 전 퇴직 준비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연령 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은 상시 근로자 1000명 이상 근로자를 고용하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퇴직 예정자에 대한 퇴직교육 등 재취업 지원 서비스를 의무화하고 있다.
중소사업장은 퇴직 교육이 의무가 아닌 만큼, 상당수 근로자는 퇴직 준비를 제때 하지 못한 채 은퇴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신 강사의 퇴직교육을 받은 이들이 주로 하는 말은 “어디서 알아봐야 하나 했다” “누구한테 물어보기도 뭐 했다”라고 한다. 그만큼 퇴직 준비가 돼 있지도, 어디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고 있는 셈이다.
“쉴 수 없다”…고된 일이라도 찾는 중·고령층
“새벽 운전, 피곤하죠.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인걸요.”
지난 22일 새벽 1시 서울 성북구 안암역 근처에서 만난 택시운전사 A(68)씨는 20년 가까이 근무한 군에서 전역한 이후 공기관에서 일하다 50대 후반 은퇴했다고 한다. 퇴직 후 고령에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한 A씨는 법인택시에 취직했다. 경력을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택시 운전을 시작한 지 5년차인 그는 70세까지 일하는 게 목표다. A씨는 “일을 하다가 손을 놓는 순간 금방 늙는 것 같다”며 “재취업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택시운전이라도 하는 것이다. 힘든 손님도 가끔 있지만, 재밌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서비스 현장 상황도 비슷하다. 2030대 청년층이 ‘열악한 일자리’일 돌봄 노동에 유입되지 않으면서, 요양보호사 평균연령은 60대다. 또 90% 이상이 여성이다. 경기도 용인의 한 노인요양보호시설에서 근무하는 임모(65·여)씨는 근무지에서 젊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은퇴 후 요양보호사로 일한 지 5년차인 그는 치매 노인을 목욕시키거나 기저귀 교체를 할 때 힘에 부치지만 일할 수 있다는게 감사할 뿐이다. 그는 앞으로도 ‘쉴 생각’이 없다고 손사래 쳤다.
이마저도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건설현장에서 일해 온 B(70)씨는 2주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고령으로 인한 안전 문제로 건설사들이 채용을 꺼리는 탓이다. 유명 대학 교수 역시 65~70세에 은퇴한 이후 초·중·고교에서 아이들에게 재능기부로 교육을 하려 해도 62세 나이 제한, 교원자격증 벽에 부딪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대학 교수를 하다 은퇴하고 택시 운전을 하는 분도 있다”며 “해외에서 공부한 전산학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집에서 쉬고만 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중국이 퇴직한 한국 교수들을 다 데리고 간다. 얼마나 사회적으로 낭비인가”라고 말했다.
“자존감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 필요”
일하고 싶어 하는 노인 비율은 증가 추세다. 지난 1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표한 ‘주된 일자리 은퇴 후 경제활동 특성 분석’에 따르면 55~64세 중고령자의 주된 일자리 유지 및 퇴직 후 경제활동 분석 결과,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 후 재취업하는 비중은 지난 2014년 31.3%에서 2022년 33.3%로 2.0%p 늘었다. 미취업 상태 비중도 2014년 29.4%에서 2022년 28.4%로 1.0%p 감소했다.
연구진은 “분석 결과 단순노무직으로 재취업하는 비중이 높지만 최근 들어 감소 추세를 보이고, 서비스직이나 사무직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며 “안정적인 소득 보충이 가능한 취업형 일자리 수요 증가에 대비해 취업형 일자리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언직 퇴직교육 강사(이음나눔유니온)는 “고령화 시대에 선진사회로 가기 위해 돌봄 노동은 노동시장에서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예산과 인력 투입으로 처우를 개선해 고령 근로자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고 개인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소방안전원과 같이 건설현장에서도 고령 근로자가 일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고령 근로자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덜 힘들게 일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