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거나 추울 때 이동노동자 쉼터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는데, 왜 우리 동네는 없죠?” (택배기사 A씨)
낮 기온 30도에 육박하는 더위가 찾아왔다. 플랫폼 사업이 확대되면서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가 서울 곳곳에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쉼터의 존재를 모르거나 접근성이 떨어져 쉼터를 찾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서울시는 이동노동자의 기본적 인권인 건강권과 휴식권 보장을 위해 전 자치구에 쉼터를 1개씩 설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15개 자치구에는 쉼터가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역 내 이동노동자 쉼터는 총 13곳이다. 시가 직접 운영하는 △휴서울이동노동자쉼터 5곳(서초구 중구 마포구 은평구) △서울시로부터 지원받는 쉼터 6곳(강남구 도봉구 서대문구 영등포구 중랑구) △중랑구, 성동구의 자체 운영 쉼터 2곳이다.
배달 기사, 대리운전, 퀵서비스, 학습지 교사, 방문 점검원 등 이동노동자는 근무지가 정해져 있지 않고, 업무가 대부분 외부에서 이뤄져 더위와 추위, 눈·비와 같은 기후, 화장실 이용 문제 등에 취약하다. 이동노동자를 위한 공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쉼터는 이들에게 오아시스처럼 반가운 공간일 수밖에 없다. 최근 기자가 찾은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이동노동자북창쉼터에도 7~8명의 이용자가 쉬고 있었다. 휴게공간에는 책상, TV, 안마의자, 휴대전화 충전기 등이 갖춰져 있었다. 금융·건강·손해사정·법률 등 각종 상담 서비스 안내도 눈에 띄었다. 여성 전용 휴게실도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이용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지난해 12월29일 발간한 ‘이동노동자 쉼터 운영현황, 평가, 활성화과제’에 따르면 휴서울노동자 쉼터(5개소) 이용자는 지난 2016년 9384명에서 2022년 4만8364명으로 5배 이상 늘었다. 쉼터 필요성에 공감한 서울시는 지난 2020년 12월22일 ‘2차 노동정책 기본계획(2020~2024년)’을 발표하고 배달·택배기사 등 이동노동자가 업무 중 짧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간이 이동노동자 쉼터를 2023년까지 전 자치구에 설치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전히 서울 절반 이상 자치구에 쉼터가 마련되지 않았다. 예산은 반토막이 났다. 서울시의 ‘간이 이동노동자 쉼터 설치 운영’에 따르면 올해 예산은 6000만원으로, 지난해 1억3500만원에 비해 56% 줄었다. 휴게시설을 적극적으로 설치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이동노동자 쉼터 부지를 선정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크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주차장, 화장실 등 시설이 있어야 (이용자들이) 부족함 없이 이용할 수 있는데 장소 확보를 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갖출 것을 다 갖춘 기존 쉼터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강남 쉼터 단 2곳만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고 대부분 평일 오후 6~8시면 문을 닫는다. 야간 운영을 하는 서초, 합정 쉼터의 경우 이 시간대 대리운전 기사의 이용률이 높지만, 주간 이용자는 많지 않다. 주말에 일하는 이동노동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지난주부터 서초 쉼터만 주말 운영을 시작했다. 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인데 이들이 활발하게 근무하는 피크타임과 주말에 대체로 문을 닫는 셈이다. 일부 쉼터는 골목에 위치하거나 고층 혹은 지하에 있어 접근성도 낮다. 결국 몇몇 자치구는 쉼터를 설치했다가 폐쇄하기도 했다.
이동노동자들은 쉼터가 다양한 형태로 확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쉼터가 ‘이동노동자들에 도움이 된다’면서도 “거점형 쉼터는 예산과 공간이 필요해 (확대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라이더들의 동선은 제각각이기 때문에 이러한 쉼터가 곳곳에 있는 게 좋다. 거점 쉼터를 중심으로 간이형, 이동형, 기존 편의점을 이용한 쉼터가 곳곳에 설치돼야 라이더들의 이용 편의가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도 민관 협력으로 눈을 돌린 분위기다. 시와 자치구에서 직접 운영하기보다 민간 부분과 협력해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시는 최근 우아한청년들, 이마트24와 손잡고 편의점 900곳에 이동노동자에 대한 휴식공간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편의점 동행쉼터는 5~6월 시범운영을 거쳐 혹서기(7~8월), 혹한기(11~12월) 운영한다. 앞서 시는 거점형 쉼터 외에도 혹서기·혹한기에 캠핑카를 개조해 이동노동자들이 일하는 지역을 순회하는 ‘찾아가는 이동노동자 쉼터’를 2년 연속 운영하기도 했다.
시 관계자는 “쉼터와 관련해 예산과 운영 측면에서 검토할 계획”이라며 “민간 협력을 통해 (쉼터를) 더 구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