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기술탈취를 막고 중소기업을 지원할 여러 법안들은 21대 국회가 막바지에 다다르며 폐기될 운명에 처해있다. 대기업의 기술탈취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서는 한숨을 내쉬고 있다.
19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중소기업 또는 특허권자의 기술보호를 위한 법안 12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대표적이다. 해당 법안은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처럼 기술 탈취 관련된 내용 및 증거를 상호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K-디스커버리법’으로도 불린다.
장기간 진행되는 특허침해 소송에서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법안도 눈에 띈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발명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산업재산권분쟁종합센터를 설치하고 효과적인 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특허침해 소송 등에서 자료 제출을 거부할 경우 불이익을 주도록 하는 법안도 있다. 이규민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이수진 민주당 의원의 ‘특허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이다.
문제는 해당 법안들이 오는 29일 21대 국회가 문을 닫으면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다는 점이다. 22대 국회가 새롭게 구성, 상임위원회가 꾸려지기까지 또다시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상임위원회가 꾸려지더라도 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기업의 기술탈취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은 여전히 많다. 최근 한 중소기업도 LG전자에 특허 침해 관련 경고장을 보냈다. LG전자가 지난 2022년 출시한 무선 스팀 물걸레 청소기 ‘LG코드제로 오브제컬렉션 A9S’가 해당 업체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의심에서다. 다만 LG전자는 “해당 업체의 일방적 주장”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실제 통계도 있다. 지난해 9월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기술탈취 근절 위한 정책 수요조사’에 따르면 특허를 보유한 중소기업 10곳 중 1곳 이상(10.7%)이 기술탈취 피해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기술탈취 피해를 경험한 업체 중 43.8%는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기술탈취 피해 사실 입증이 어려워서’(78.6%)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대기업과 싸워봤자 100전 100패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기술탈취 관련 정부로부터 제도적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실질적 지원책은 없다. 정부에서도 ‘기업 간 해결할 문제’라고 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허침해소송에서 피고 기업에 특허 침해 관련 자료제출을 명령하는 제도가 있으나 벌칙 조항이 없다는 지적이다. 정차호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고가 자료 제출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때는 법원에서도 철퇴를 가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벌칙 조항이 없어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존에 도입된 제도가 실효성 있게 운용될 수 있도록 정비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