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아타운·신통기획 등 서울 정비사업 좌초 위기
- 주민 갈등· 외부 투기세력 유입에 사업 난항
- 뉴빌리지 사업, 정부 10조 투입에도 우려 목소리
- 도시기반시설 등 지역 맞춤형 공공 지원 커져야
“재개발? 앞으로 10년은 더 걸려. 이미 30년 전부터 계속 나온 얘기야. 반대도 많아.”
21일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115번지 일대에서 만난 한 상가 주인 A씨는 두 손으로 크게 엑스(X)표시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좁은 방이 밀집해 이른바 ‘벌집촌’으로 불리는 가리봉동 115번지 일대는 지난 1월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이 확정돼 정비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지역이다. 거주민들은 재개발 사업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A씨는 “빌라 가진 사람들이야 찬성하는 분위기지만, 상가 주인들의 반대가 많다”고 말했다. 신통기획 부지에 포함된 식당 주인 B씨도 “재개발한다는 얘기는 오래됐다. 이번에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해당 지역은 20%에 가까운 토지 등 소유주가 구청에 반대 의사를 전했다.
신통기획·모아타운 등 서울의 소규모 정비사업지 곳곳에서 주민 간 찬반 의견이 나뉘며 갈등을 겪고 있다. 주민 반대에 투기 우려까지 더해지면서 정비사업 추진 단계에서 좌초되는 것을 물론, 대상지에서 선정된 이후에도 주민 반대로 입안 재검토까지 진행되는 분위기다.
모아타운 상황도 비슷하다. 외부 투기세력 유입, 주민 반대 등으로 서울 광진구 자양4동은 2022년 모아타운 대상지로 선정됐지만 결국 사업이 무산됐다. 모아타운 추진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집단행동까지 벌이며 강력히 반발했던 서초구 양재2동 280, 양재2동 335일대와 강남구 개포2동 159일대는 최근 모아타운 사업에 미선정됐다.
지난해 12월 모아타운 대상지로 지정된 강동구 둔촌동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둔촌동 모아타운 반대 주민 C씨는 “지난 10일 구청에 관련 (반대) 서류를 제출했고, 이달 내 서울시에 전달된다고 한다”면서도 반대율이 높아 고심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반면 모아타운을 찬성하는 주민 D씨는 “현재 조합 설립 요건(80%) 중 60%가량 찬성을 확보해 진행 중”이라고 주장했다.
‘모아타운’ ‘신통기획’ 난항 겪는 서울…국토부는 ‘뉴빌리지’ 준비
소규모 정비사업이 난항을 겪는 것은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빈집과 노후주택이 많은 수도권, 지방에서는 주민 반대는 물론 저조한 사업성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뉴빌리지’ 사업을 도입하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 중 시범사업 지역을 공모, 10년간 10조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도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뉴빌리지 사업은 노후 단독·빌라촌의 소규모 정비 또는 개별주택 재건축과 연계해 주민들에게 필요한 편의시설 설치를 지원하는 것이다. 국비로 기반시설 및 편의시설 설치비용을 지원하고 기금 융자로 주택 정비를 지원한다. 쉽게 정리하면, 시공사가 집을 지으면 정부는 기반 및 편의시설을 지어 도시를 재생한다는 구상이다. 때문에 민간 개발 유도를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문제는 사업성이다. 서울에 비해 사업성이 높지 않은 지역을 소규모로 한데 모아 정비사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선 분양가격이 높아져야 하는데, 지방은 분양가격 자체가 높지 않아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특히 인구 유출이 심각한 인구소멸 가능 지역은 더 상황이 좋지 않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가 아닌 경우에는 정비사업 수익성이 낮다”며 투자가 살아날지는 미지수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2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이 전국적으로 6만가구를 넘어서고, 악성 미분양도 1만가구에 달하고 있다. 정부는 미분양을 줄이기 위해 향후 2년간 85㎡ 이하, 6억원 이하의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최초 구입하는 경우 해당 주택을 세제 산정 때 주택 수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국 83개 소멸 가능한 지역은 아파트를 거의 짓지 않아 미분양을 찾기 힘들다. 소규모 정비사업도 같은 맥락에서 관심을 끌기 어려워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도시재생사업 관련 연구원 E씨도 “모아타운, 신통기획, 뉴빌리지 사업은 각각 추진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큰 틀에선 동일한 ‘재개발’이다. 모아타운, 신통기획, 가로주택정비사업 진행에서 어려움을 봤듯이 소규모 정비사업은 다툼이 많은 사업”이라고 했다.
소규모 정비사업 성공 요건은
사업성이 부족한 노후 주거지역의 정비를 위해서는 각 지역에 맞는 공공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서울은 대규모 개발이 이미 많이 진행됐기 때문에 도심에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사업지를 개발해야 할 필요가 높다. 하지만 지방은 지역 특성별로 다르다”며 소규모 정비사업과 다른 재개발 방식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어 “광주, 부산 등 일부 지역은 여전히 개발 가능한 택지가 남아 있어 주택 공급이 가능하다”며 일례로 광주시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소개했다. 광주시는 장기간 공원으로 묶인 부지를 활용하기 위해 건설사가 매입하도록 했다. 건설사가 70% 이상을 공원으로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고, 나머지 30%에 주거·상업 시설 등 비공원 시설을 짓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소규모 정비사업에 앞서 생활인구를 늘리기 위한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봤다. 건설사, 투자자 입장에서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는 만큼의 도시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방의 소규모 정비사업은 인구 유입에 효과가 거의 없겠지만, 유출 억제 효과는 있을 수 있다”며 “소규모 정비사업에는 도시기반시설이 들어갈 여지가 많지 않은데, 결국 지자체가 적절하게 개입해야 하는 부분이다. 도시기반시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예산과 재원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도 “(지역 내) 일자리를 만들거나 머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첨단산업단지는 부지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고, 고급 일자리를 확대할 수 있다. 서울이 아니어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여건을 먼저 만들어야 지역 균형 발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