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를 포함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저출생 문제 대응 방안을 생식기능에서 찾고 있다. 이를 두고 야권과 시민 일부에선 “정관·난관 복원비가 없어서 아이를 안 낳는 것이 아니다”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인구 역피라미드 구조를 가속화하는 요인 중 하나인 청년 만혼, 늦은 출산, 출산 포기를 줄일 수 있는 인식과 정책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3일 SNS에 “정·난관 복원 지원은 그 자체로 강력한 임신과 출산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비판에 반박했다. 서울시는 최근 올해 첫 편성된 추경예산안 1조5110억원 가운데 저출생 대책으로 정관, 난관 복원 시술 지원금 1억원을 편성했다. 1인당 최대 100만원의 시술비를 지원해 임신과 출산을 희망하는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을 적용해도 정관 복원에 40만원, 난관 복원에 80만원가량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외에도 지자체를 중심으로 시술비 지원은 느는 추세다. 전남 영광군·목포시·진도군·함평군, 경기 군포시, 충북 제천시, 경남 창원시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대구시는 저출생 해결을 위해 지난 3월 지역 거주 남성들을 대상으로 스마트 자가 정자진단기 4000대를 무료 배포하기도 했다.
“출산 원한다면 지원 필요” vs “근본적 대책 필요”
시민들 반응은 제각각이다. 기혼자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세 자녀를 둔 김모(40)씨는 “출산을 한 번 경험한 이들이 다시 출산할 확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기 때문에 좋은 정책이라고 본다”면서도 “2~3명 이상 출산한 사람에 대한 지원이 약해 이런 부분에 대한 지원이 함께 맞물려야 효과를 발휘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둘째를 출산한 이모(34)씨는 “정관·난관 복원 시술 후 임신 성공률이 높고, 본인도 (출산을) 희망한다면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며 “아파트 가격을 확 떨어뜨려야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조금은 뜬구름 같은 말보다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했다.
반면 30대 미혼 직장인 이모씨는 “결혼적령기가 늦어지고 있어 기혼자들에게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미혼 입장에선 크게 와닿지 않는다. 20대 후반~30대 중반 결혼적령기 청년들에게 현실적인 맞춤 정책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30대 미혼 직장인 박모씨도 “정관 시술 비용 지원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정관 시술 비용이 없어 아이를 낳지 않는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여성·난임부부·청년 지원 확대 필요”
정·난관 복원 사업만으론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오 시장 역시 정·난관 복원 시술비 지원은 서울시의 다양한 저출생 정책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난관 복원을 한다고 해서 시술 이전과 같아지지 않는다. 시술 성공률은 70~90% 정도, 전체의 30~70%가 임신 능력을 회복한다고 한다. 복원 시술 지원보다 더 필요한 이들에 지원하는 것이 정책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다.
여성, 난임부부에 대한 지원은 확대가 필요하다. 박현준 부산대 비뇨의학과 교수는 “정관 절제 시술을 하고 기간이 길어질수록 개통률, 임신 성공률은 조금 떨어질 수 있다”며 “과거에 비해 기술이 굉장히 발달했기 때문에 시술을 받은지 10년이 지났다고 해서 임신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술 후 1~2년 만에 다시 복원하는 것보다는 임신율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미혼 남성 중에 (정관을) 묶는 경우가 꽤 있다”면서도 “지자체 지원은 긍정적이다. 다만 사실 돈이 없어서 (복원) 시술을 하고 싶은데 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혼 자체를 하기 싫은 분위기이다 보니 이러한 시술 지원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에서 정관 복원 시술비 지원을 했을 때, 손쉽게 묶어버리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지 우려도 있다”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의학적으로는 난임부부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혜정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박사도 “저출생 문제는 출산에 집착해선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며 “‘여성이 아이 낳는 기계냐’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지자체들이) 문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출산을 안 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청년에게 정·난관 복원 시술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좀 더 임신에 대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그널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유재은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은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시급성에서 온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한때 출산억제 정책에서 정관 시술비를 지원했고, (심각한 저출생 상황에서는) 현재 복원 시술에 지원하는 게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의 목적은 이해한다면서도 근본적으로 수혜 대상의 욕구를 이해하는 정책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유 의원은 “정·난관 복구 시술비 지원이 논란이 된 것은, 결국 청년들의 입장에서 욕구를 더 충족시켜줄 수 있는 다른 정책들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라 본다”며 “정책이 비용 대비 진짜 효과가 있는 정책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조금 더 현장 목소리를 많이 듣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