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9%. 유튜브나 OTT 영상 콘텐츠를 ‘빨리 감기’로 시청한 적 있는 시청자 비율이다. 해당 통계를 발표한 마크로알엠브레인의 ‘영상 콘텐츠 빨리 감기 시청 습관 관련 조사’에 따르면, 이른바 패스트 무비(영화·드라마를 짧게 요약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자주 본다고 답한 이들은 49.7%에 달한다. 시간 대비 성과에 주목하다 보니 숏폼 콘텐츠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기도 했다. 시청 행태가 달라진 상황에서 영화·드라마 등 전통적인 콘텐츠의 전망은 밝지 않다. 영화는 중간급 영화의 흥행 부진이 이어지고 있으며 드라마는 제작비 상승 대비 수익성은 악화 중이다. 이미 업계에선 해외 판매가 없으면 제작 생태계까지 위태하다는 자조가 나온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4일 부산 우동 CGV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진행된 CJ 영화 포럼에선 CJ ENM을 비롯해 산하 콘텐츠 기업인 CJ CGV, 티빙, 스튜디오드래곤 주요 관계자 모여 앞으로의 콘텐츠 업계 전망과 생존 방안을 모색했다. 윤상현 CJ ENM 엔터테인먼트 부문 대표의 인사말을 비롯해 조진호 CGV 국내사업본부장, 민선홍 티빙 CCO와 서장호 CJ ENM 콘텐츠 유통사업부장, 이동현 CJ CGV 경영혁신실장, 장경익 스튜디오드래곤 대표, 최주희 티빙 대표 등이 콘텐츠 산업 현황을 진단하고 사업성을 돌아봤다. 이 외에도 고경범 CJ ENM 영화사업부장, 한준희 감독, 전고운 감독, 유재선 감독이 모여 제작자 입장에서 세계 속 한국 콘텐츠의 경쟁력을 살폈다.
이날 현장을 찾은 윤상현 대표는 “숱한 1000만 영화를 배출했던 과거의 성공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신중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운을 뗐다. CGV 집계에 따르면 올해 영화시장 규모는 1.3억명으로 전년 대비 4% 소폭 성장을 이뤄냈으나 흥행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다. 흥행 상위 10위권 작품의 관객 점유율이 2019~2020년 44%대 수준이던 반면 2024년에는 57.3%까지 치솟았다.
조진호 본부장은 “올해 영화 소비 추세는 시성비와 서브컬처 진화, 다양성과 상생”이라며 “관객들이 투자 시간 대비 만족도에 집중하다 보니 타인의 관람평을 찾아보고, 그러면서 관람 패턴이 늦어져 장기 상영 콘텐츠가 증가했다”고 짚었다. 여기에 애니메이션과 중소형 예술영화 관람층이 두꺼워지고 ‘파묘’·‘핸섬가이즈’·‘파일럿’ 등 인기작의 장르가 다양해졌다. OTT 시리즈물과 극장이 협업하는 연계 마케팅도 늘었다. 팬데믹 이후 시장이 새로운 표준(뉴노멀)을 찾아가는 모양새다. CJ CGV 4D 플렉스 부문에서는 특수관에서 공연 실황을 상영하기 시작해 새 먹거리로 삼았다. 2020년에 9개국 500여개 배급에 불과했던 사업 규모가 2023년엔 전 세계 100여개국 6000개 스크린으로 늘었을 정도다.
현재 콘텐츠 업계는 제작비 상승과 수익성 악화가 맞물리며 위기를 겪고 있다. 드라마는 수익성 악화로 편성 확정이 어려워져 수익 제고를 위해 해외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영화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동현 실장은 “팬데믹 전 국내 영화 관객 수가 가장 많던 2019년을 100으로 가정하면 현재는 60 정도로 떨어진 상태”라며 “‘파묘’나 ‘범죄도시’ 같은 큰 화제작이 있어도 중급 영화 흥행작이 줄어든 데다, 상황을 반전시킬 모멘텀이 나올 만한 여건도 아니어서 고민이 크다”고 했다. OTT도 성장이 둔화했다. 티빙의 올해 국내 가입자 성장세는 5%로, 향후 성장률 역시 5% 미만으로 예측된다. 드라마 역시 해외 판매를 모색해도 광고 판매가 감소세를 보이며 수익이 악화 일로를 겪고 있다. 각 분야 전문가가 꼽은 대책은 결국 좋은 콘텐츠다. 장경익·최주희 대표는 “관객에게 외면받지 않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새로운 비즈니스 수익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고운 감독과 한준희 감독 역시 “더 좋은 콘텐츠 개발을 위해 제작 자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극장과 OTT를 연계한 마케팅도 대안 중 하나다. 지난 5월 CGV에서 진행한 tvN 인기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마지막 회 단체 관람 행사는 매진 행렬을 이뤘다. CGV 자체 분석에 따르면 이 중 극장에 오지 않던 관객 25%가 ‘선재 업고 튀어’를 통해 극장에 다시 찾기 시작했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CJ ENM은 최근 플랫폼 간 연계를 통해 IP 기획을 제작 단계부터 유통에까지 반영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장경익 대표와 서장호 부장은 “콘텐츠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플랫폼 연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글로벌 시장은 이제 선택 아닌 필수”라고 말을 잇던 이들은 “한국 콘텐츠 매출이 높지 않은 신규 지역 공략을 위한 포괄 전략을 고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