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폭력·폭언으로 집을 나온 가정 밖 청소년들이 쉼터 입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가정폭력 피해가 인정된 경우가 아니면 쉼터 입소 시 보호자에게 연락하도록 하는 현행 제도 때문이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은 22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수의 가정 밖 청소년이 청소년 쉼터에 입소하지 못하거나 않으며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져 있다”며 여성가족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구체적으로 청소년 쉼터 입소 절차 개선, 아동학대·가정폭력·실종아동 신고 이후 지원 절차 강화, 쉼터 입소에서 청소년 결정의 반영 방안 마련 등이다.
이들은 현행 여가부 지침이 가정 내 갈등·폭력으로 집을 나온 청소년들이 쉼터를 이용할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고 비판했다. 여가부 지침인 ‘청소년사업안내’는 가정 밖 청소년이 쉼터를 이용할 경우 72시간 내로 법적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호자가 자녀의 쉼터 입소에 동의하지 않거나 친권자의 법적 권리를 주장하며 돌려보내라고 요구한다면 쉼터 측은 거부할 권한이 없다.
여가부는 지난 8일 설명자료를 내고 “가정폭력·학대로 가출한 청소년은 보호자 연락 원칙에서 예외”라고 밝혔지만, 이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라며 적극적인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보호자 연락 원칙에서 제외되려면 부모를 아동학대 등으로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청소년들은 신고로 인한 보복과 죄책감, 사회적 시선 탓에 신고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을 피해 쉼터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모래 활동가는 “양육자와 한집에서 살 수 없어 뛰쳐나왔는데 그 양육자에게 ‘네 자식 여기 있다’고 알리는 것에 아무런 모순이 없는 것이냐”라며 “피해자성을 입증해 가장 자극적인 에피소드를 가진 피해자를 선별하는 데 급급하기보다 청소년 홈리스·가정 폭력 상태를 직시하라”고 목소리 높였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은 “이런 이유로 상당수의 청소년들은 가해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쉼터 이용을 포기하게 되고, 이는 보호 체계 밖으로 밀려나 중대한 위험에 놓이게 되는 상황을 초래한다”며 “가정 내 보호자와의 갈등 및 폭력을 경험한 청소년 입장에서 보호자에게 연락한다는 것은 도망쳐 나온 청소년의 거처를 알리게 되는 일이며, 가해 보호자의 등장만으로 공포와 불안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2023년 쉼터를 이용하는 가정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시행한 실태조사 결과, 가출 원인으로 위기 청소년의 70.6%는 ‘가족과의 갈등’을 꼽았다. ‘가족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49.4%)가 뒤를 이었다. 국현 청소년 위기지원 현장 활동가는 “가정 밖 청소년들은 쉼터나 시설 등을 거부하고 거리에 있길 원한다”며 “여가부가 법 규정이 아닌 보호 체계 밖으로 밀려나 거리에서 버티는 청소년의 현실을 바라봐달라”고 말했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활동가 난다 역시 청소년의 권리를 보장하고 지원체계를 실행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정부가 방관하고 있다며, 청소년이 권리의 주체로서 삶을 살아가고 보장받을 수 있도록 현행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부모에게 청소년의 쉼터 입소 사실을 알리되, 해당 시설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리지 않는 규정을 법으로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며 “청소년 입장에서도 이러한 프로세스를 신뢰해야 쉼터의 문을 쉽게 두드릴 수 있고, 개별 쉼터와 종사자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실종아동법상 ‘실종아동’의 정의에서 자발적 청소년쉼터 입소자는 아예 제외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 단체는 “2023년 가출을 경험한 청소년은 10만명이 넘지만 청소년 쉼터 입소 인원은 5000여명에 그친다”며 “궁극적으로 청소년에게도 주거가 권리로 보장받을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책임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들의 문제 제기는 오는 30일 여가부 대상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논의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