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산업 고질병인 ‘공짜 야근’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포괄임금제를 고수하고 있는 크래프톤의 김창한 대표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하면서다.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은 김 대표에 “52시간제 근로 제한이 경영에 어려움을 미치는가”라고 물었다. 김 대표는 “산업 특성상 창의성이 필요하다”며 “국내 게임 경쟁력이 갈수록 낮아진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율적인 근무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크래프톤은 지난 2019년 장시간‧휴일 근무 문제로 고용노동청으로부터 시정 지시를 받았다.
경쟁력을 위해 필요하다는 김 대표 주장과 달리 장시간 근무가 불러올 이점보다 부작용이 크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류현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효율적이라는 관점은 개인이 아닌 산업에서 이윤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수면 시간을 줄여 야간 노동을 하면 집중력 저하를 가져온다. 의사 결정 판단력이 흐려지고 사고 발생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고 말했다.
극한의 연장 근무로 목숨을 잃은 사례도 있다. 지난 2017년 게임회사에서 일하던 20대 개발자가 수면‧식사 시간을 줄여 업무에 투입하는 일명 ‘크런치 모드’ 중 사망했다. 이후 주요 게임사 12곳을 대상으로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이 이뤄지기도 했다.
정부와 게임사 차원에서 제도 개선이 이뤄졌지만, 장시간 근무가 여전한 상태다. 지난해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수도권지부 IT 위원회 조사에서도 포괄임금제와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임‧IT업체 111곳 중 84곳이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고, 그 중 74곳의 근로자들이 장시간 노동이 잦다고 답했다.
지난해 허진영 펄어비스 대표 역시 ‘꼼수’ 52시간제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52시간 근무를 채운 후 자동으로 컴퓨터가 꺼지게 했지만, 공용 PC로 우회 근무를 시킨다는 제보 때문이다.
환경 개선을 위한 입법 논의도 이뤄지고 있지만, 진척은 더디다. 21대 국회에서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과 우원식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했으나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도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슷한 법안을 재발의했지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여야 갈등이 심화돼 법안 처리가 더딜 수 있으며, 쿠팡 등 대형 플랫폼 산업재해 등 현안도 쌓여있다.
게임사 개발자로 근무하는 A씨는 “개선된 부분도 많지만, 법안 처리 등 제도 개선에 진척이 있었으면 한다”며 “정치권에서 기업을 대표하는 이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소규모 동아리처럼 열정적으로 일에 몰입하던 이들로부터 게임 산업이 시작됐다”며 “희생을 당연시 하는 문화가 뿌리내린 후 잘 바뀌지 않고 있는 것 같다”며 근본적인 개선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