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련병원을 사직한 전공의들에 대해 입영 연기 특례를 제시한 것을 두고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입영 특례가 전공의 복귀를 이끌어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하지만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했을 때 국민들에게 양해를 먼저 구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13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지난 10일 사직 전공의들에게 ‘사직 시 1년 내 동일 연차·전공으로 복귀할 수 없다’는 복귀 제한 규정을 풀고 원래 근무하던 병원으로 돌아가 수련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또 수련병원에 복귀한 전공의들이 전문의를 취득할 때까지 병역 의무를 미뤄 수련 종료 후엔 군의관·공중보건의로 입영할 수 있도록 ‘입영 연기’ 방침을 세웠다. 병역 의무를 마치지 않은 사직 전공의들은 올 3월부터 군의관 등으로 입대해야 한다. 전공의들이 수련·병역 특례를 적용받기 위해선 14일부터 시작되는 레지던트 추가 모집에 지원해야 한다. 다음 달 3일부턴 인턴을 모집한다.
정부가 민감한 사안 중 하나인 병역 특례까지 제시한 배경엔 더 이상 의료공백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로선 의정갈등 사태를 봉합하기 위한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다. 2026학년도 대입 일정을 고려한 학사일정 조정과 함께 수험생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2월 초까지 내년도 의대 정원 논의가 어느 정도 마무리돼야 한다. 의대 정원 최종 결정 시한은 5월이다. 이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국방부, 병무청과 오랜 기간 전공의 병역 문제를 협의해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10일 브리핑에서 “원래 생각했던 진로로 다시 복귀한다면 그걸 지원하는 게 정부의 의무이자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좋은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년 동안 각각의 전문 분야에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잠시 뒤로 미루고 수련 현장을 떠나 고민하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전공의들에 대한 정부의 특례 제공은 이번만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전공의 모집 때에도 수련·입영 특례를 제안했지만 복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작년 7월엔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의대생들이 학교로 복귀하면 유급을 당하지 않고 보충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의과대학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예과 1학년은 낙제점(F)을 맞더라도 유급 요건을 한시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일정 기준 이상 평점과 학점 이수량을 채우면 진급할 수 있도록 했다. 통상 의대생들은 한 과목이라도 F학점을 받으면 유급된다. 이 땐 다음해에 같은 과정을 다시 들어야 한다.
정부는 의정갈등 장기화에 따른 국민적 불편을 고려해 입영 특례를 결정했다며 특혜 소지가 불거지지 않도록 국방부 등과 협의를 지속할 계획이지만, 병역 문제에 민감한 청년층 사이에선 반발이 적지 않다. 대학생 이석현(24·남·가명)씨는 “의사들한테 엎드려 ‘돌아와 달라’고 절한 것도 모자라 병역 특례라니 천룡인은 못 이긴다”라면서 “계엄포고령으로 상처받은 전공의들에게 사과한다는데 사과받을 사람은 따로 있다. 왜 엄한 데 사과하나”라고 했다. ‘천룡인’이란 특권 계층을 의미하는 인터넷 용어이다.
직장인 김성환(27·남·가명)씨는 “적당히 밀어붙이다가 중간점을 찾았어야 했는데 이 정부는 중간이란 게 없다”라며 “나중에 다른 강경파 직역이랑 갈등이 생겼을 때 명분을 주는 선례로 남을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짚었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박수혁(30·남·가명)씨도 “전공의가 현역 입대를 하든 군의관을 하든 크게 관심은 없지만 의료계가 무소불위의 집단인 걸 이번에 잘 알았다”라고 꼬집었다.
의료계는 정부의 이번 조치가 의사를 향한 국민들의 적대감을 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병원장을 지낸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정형외과 A교수는 “군입대 문제는 사회적으로 예민한 문제인데 당연히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의사는 어떤 존재이기에 계속 특혜를 주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을 것”이라며 “정부가 문제 해결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간과한 것 같다. 국민적 설득이 필요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손을 내민 만큼 의료계도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A교수는 “그동안 전공의나 학생들의 마음 고생이 컸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지 않았더라면 이들의 입장이 난감했을 것”이라면서 “정부가 이들에게 퇴로를 열어준 셈이니 복귀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미 정부로선 내줄 수 있는 것을 다 내줬다”라며 “이제 전공의·의대생은 감정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