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새 회장을 선출하며 분열된 의료계를 하나로 모을 채비를 하고 있다. 그간 정부·여당과 거리를 둬왔던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해를 넘긴 의정갈등 상황에서 대화의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은 김택우 회장을 중심으로 집행부 인선을 진행 중이다. 김 신임 회장은 지난 8일 제43대 의협 회장 보궐선거 결선 투표에서 투표 인원 2만8167명(총 선거인단 5만1895명, 투표율 54.28%) 중 1만7007표(득표율 60.38%)를 획득하며 당선됐다. 당선 직후 인수 기간 없이 바로 회무에 들어갔다.
김 회장은 당선 직후 소감을 통해 “2025학년도에 과연 의대생 교육이 가능한가에 대한 지점에서부터 정부가 교육 마스터플랜을 내야 한다. 그 플랜을 제출해야 우리가 2026년도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나온다”며 “현 상황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투쟁은 최후의 수단으로 정부가 우리를 마지막 코너까지 몰아넣을 때 취할 선택지 중 하나다”라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로) 현재 정책 결정권자가 부재한 상태이지만 문제를 풀기 위해선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투쟁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수단은 아니라며 정부와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김 회장의 대화 의지 표명에 정부와 여당도 잇따라 화답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9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새로운 의협 집행부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박 차관은 “조속히 의정갈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화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여당 원내대표도 “정부, 의사단체와 머리 맞대고 실질적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며 ‘여의정 협의체’ 재개를 제안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0일 “지난해 가동하다가 중단된 여의정 대화를 재개해 의대 정원 문제를 포함한 의료개혁 과제에 대한 지혜를 모으겠다”면서 “전공의의 현장 복귀가 시급한 만큼 당과 정부가 제도적인 장애물을 제거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직 전공의 병역법 특례도 언급했다. 현행 제도에서 전공의는 수련 중단 후 1년 이내에 동일 진료과와 병원에 지원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유예하고 수련 중단 시 군 요원으로 선발·징집하게 돼 있는 병역법 시행령 규정에 특례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권 원내대표는 “일단 전공의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조치를 취해놓고 대화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특례 조항을) 정부에 요청했다”면서 “김택우 회장과 빨리 만나서 대화하자고 통화했다. 이런 조치들은 의료 현장 안정화를 위해 필수적인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검토를 바란다”고 했다.
의정갈등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쥔 전공의들이 정부와 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임 의협회장, 2026학년도 의대정원 반으로 줄여도 수용 못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 번 뵈었으면 한다”는 글을 올렸다. 박 위원장이 SNS를 통해 특정인에게 만남을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최근 개혁신당,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간담회를 가졌지만 정부, 여당과는 거리를 둬왔다. 특히 지난해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를 향해 사태 해결을 위한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며 정부·여당이 참여하는 여의정 협의체도 거부했다.
만남이 성사될 경우 박 위원장은 의학 교육 문제 해결과 함께 2026학년도 의대 정원에 대한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전국 39개 의대를 아우르는 총 정원을 2월 초까지 확정해야 한다. 대학들은 매년 5월 학과별 모집 정원을 포함한 신입생 모집 요강을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