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서울 자양동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황모(57·여)씨는 불법도박팍에서 '청담할머니'로 통한다. 알부자를 찾아내 도박판에 끌어들인 뒤 거액을 뜯어내는 데는 그녀만한 '선수'는 없었다.
그런 청담할머니한테 지난 2009년 7월 박모(63)씨가 포착됐다. 동네에서 제법 알부자로 소문났던 그가 어느날 황씨의 주유소에 들리자, 청담할머니는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그녀는 '미인계 선수' 현모(여.48)씨를 전화로 호출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미모를 지닌 현씨는 살살 녹이는 애교로 박씨를 현혹하기 시작했다.
제법 시간이 흘러가자 둘 사이는 너무 가까워졌다. 이미 박씨는 현씨 말이라면 뭐든 할 정도로 완저히 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현씨는 그런 그에게 "우리 집에 가자. 큰 판이 있다"고 꼬드겼다. 이미 둘은 심심풀이 도박판을 벌이며 "이 정도 실력이면 돈 좀 만지겠다"는 현씨 말에 박씨가 "옳지"라며 맞장구를 쳐왔던 터였다.
현씨 집에는 이미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명 '도리짓고댕'판을 벌이던 이들 사이에 박씨는 자연스럽게 끼었고 처음엔 잃는 돈보다 따는 돈이 더 많았다. 한창 박씨는 기분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현씨와 도박판의 한패인 '기술자'들이 잘 짜놓은 각본 그대로의 연출이었을 뿐이다.
판돈이 올라갈 때쯤 현씨는 주방으로 나와 미리 준비한 마약류 ‘로라제팜’을 커피에 탔다. ‘로라제팜’은 소량으로도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환각석 약물이다. 도박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박씨는 현씨가 건네는 커피를 아무런 의심 없이 들이켰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박씨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몽롱한 상태에서 계속 판돈에 돈을 거는 자신을 스스로 말릴 수도 없었다. 현씨 일당은 이때를 놓칠세라 박씨가 가진 돈을 몽땅 따버렸다.
큰 돈을 잃은 박씨는 본전 욕심에 현씨 집을 자주 찾았고 그때마다 현씨는 ‘로라제팜’을 넣은 커피와 술을 박씨에게 건넸다. 결국 박씨는 1년여 만에 무려 1억5000만원을 탕진한 뒤 도박판에 다시는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청담할머니 황씨와 미인계 선수 현씨는 다음 목표를 찾았다. 평소 알고 지낸 송파구 석촌동 서모(여.63)씨였다. 이번에도 현씨는 판이 벌어질 때마다 미리 준비한 ‘로라제팜’ 넣은 음료를 서씨에게 건넸다. 서씨도 이들 일당에게 1여 년 동안 3억5000만원을 날렸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3일 주부도박단 일당 15명을 적발해 이가운데 두 사람의 상습적인 도박사기 행각을 밝혀내 구속했다. 김모씨(79·여) 등 11명은 불구속 입건됐으며 달아난 김모(48·여)씨 등 2명은 공개 수배됐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은 “이들은 40대 후반에서 70대 후반의 여자들로 20~30년 전부터 강남 일대에서 활동해온 ‘날씬이파’ 조직원들”이라며 “돈을 계속 빌려주며 판을 벌이는 바람에 운전기사인 피해자가 생계수단인 덤프트럭을 처분한 일도 있었다"고 혀를 찼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지영 기자 young@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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