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 지금껏 자식들만 바라보고 살아온 주부 임모 씨(55)는 요즘 공허함과 상실감에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하다. 슬하에 둔 3명의 딸들과 귀여운 막내 아들까지 모두 장성해 뿔뿔이 흩어지고 텅 빈 집안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집안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또 무엇을 해야 할지 쉽사리 정할 수가 없다.
자신의 욕구보다 아이들, 남편 등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중년 여성은 상실감과 심리적 공황 상태가 쉽게 찾아온다. 자식들은 장성해서 떠나고 텅 빈 집에 홀로 남아 노년을 걱정하면서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 대한 심각한 회의에 빠지게 된다. 40~50대 주부들을 괴롭히는 빈 둥지 증후군의 증상과 해법을 을지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성훈 교수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중년 주부,
빈 둥지 홀로 지키는 어미 새처럼 공허해
빈 둥지 증후군은 중년의 주부가 자기 정체성 상실을 느끼는 심리적 현상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신의 욕구보다는 아이들, 남편, 시집, 친정 등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된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고 자녀들이 성장함에 따라 엄마로서의 역할이 줄어든다.
언제부터인가 남편보다는 자식에게 더욱 정성을 쏟으면서 살아가던 여성으로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될 위험에 빠진다. 게다가 사회활동을 지속하기 보다는 가정이라는 틀 속에 갇혀 살아오느라, 가족관계가 인간관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주부들은 더욱 자신의 처지에 대해 비관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빈 둥지에 남겨진 어미 새와 같다고 해서 ‘빈 둥지 증후군’이라고 한다.
빈 둥지 증후군 자체가 질병은 아니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우울증이 되기도 한다. 특히 중상층 이상의 생활수준과 대졸 이상의 학력을 지닌 주부들 사이에서 이런 ‘빈 둥지 증후군’이 흔히 발생한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해소하기도
주부들은 이러한 심리적 상실감과 시간적 공허감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자기개발에 힘쓰게 된다. 동네 부동산 중개소를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요리나 종교에 심취하기도 한다. 또한 40~50대의 나이에 늦둥이를 갖는 경우도 있다. 결과와 상관없이 이런 노력을 하는 것 자체가 건강한 해결 방법이지만 자신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도리어 화를 부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건강이나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건강염려증에 빠지거나 과도한 성형수술을 하는 경우가 있으며, 일부는 심리적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에, 혹은 쇼핑 중독증에 빠지기도 한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미 어머니의 자잘한 관심을 부담스러워할 나이가 된 아이들에게 여전히 지나친 관심을 쏟아 가족 간 마찰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이를 가족들이 거부할 경우 심하게 우울해한다.
◇빈 둥지 증후군 이겨내려면?
빈 둥지 증후군은 아이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증상이다 따라서 단번에 만족할 만한 대안을 얻기는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달성하기 쉬운 목표를 정하고 차근히 준비해야 한다. 자원봉사, 종교생활, 평생교육, 재취업 등 활동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찾으며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도움이 된다.
정성훈 교수는 “무엇보다 새로운 정체성을 시험해보려는 아내 혹은 어머니에 대한 가족들의 지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사회적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주부가 새로이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다소 미진해 보일 수 있지만 중년 이후를 준비하려는 주부의 계획을 폄하하지 말아야 하며, 함께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증후군을 이겨내지 못하고 우울증의 증세를 보이면 먼저 우울증과 혼동되기 쉬운 질환들을 감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나 간염, 각종 심장질환, 류마티스, 사지 마비가 없는 숨은 중풍 등도 우울증과 유사한 증상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으로 확진된 경우에는 약물치료, 정신치료, 집단인지치료, 광선치료, 자기자극요법 등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증상을 빨리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면 좋은 치료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술이나 담배를 금하고 의사의 처방이 없는 안정제, 진정제, 항정신성 약제의 사용은 피해야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성지 기자 ohappy@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