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보증금은 주인 소유?” 에어비앤비, 여행객 보증금 보호정책 사실상 전무

[단독] “보증금은 주인 소유?” 에어비앤비, 여행객 보증금 보호정책 사실상 전무

기사승인 2016-06-23 08:07:22

에어비앤비에서 임대인(호스트) 보호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하고 있는 ‘임대 보증금 제도(Security Deposit)’가 여행객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여행 성수기를 맞은 여행업계에 논란이 예상된다.

에어비앤비는 이용약관 12번 ‘Damage to Accommodations and Security Deposits’에서 임대 보증금에 관한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객관·전문적인 중재 창구 없이 보증금에 관한 징수를 일방 집행해 사실상 호스트의 ‘추가 비용 청구’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A씨는 에어비앤비 소개로 일본 도쿄의 한 숙소에 머물렀다가 시설물 파손 사유로 추가비용이 청구됐다. 귀국한 지 2일여 뒤 호스트는 커튼 상단의 갈고리(hook) 하나가 파손돼 커튼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며 커튼값(5만5000원)을 요구했다.

커튼은 발코니와 방을 잇는 출입문 안쪽에 설치돼있었는데, A씨는 해당 커튼의 상태를 눈 여겨 보지 않았다. 분쟁이 발생한다는 전제 하에 숙소 내부 시설물들을 하나하나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긴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A씨가 커튼에 손을 댄 건 3-4차례 발코니 쪽 문을 열어 환기할 때가 유일했는데, 당시 커튼은 이상 없이 움직였다.

A씨는 이러한 내용을 담아 호스트에게 거절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곧장 호스트는 에어비앤비측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소명자료를 제출하라는 에어비앤비측 요청에 A씨는 “내가 사용한 커튼은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만약 내가 머물던 당시 커튼 갈고리 하나가 파손됐다는 직접증거를 제시하면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내용을 이메일로 전달했다.

소명을 보낸 지 3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에 A씨는 한화 5만5000원이 신용카드로 빠져나갔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7분 뒤 에어비앤비는 “상황이 복잡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호스트가 보낸 사진과 주장에 근거해 당신은 임대 보증금으로 내건 47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A씨는 곧장 “결정은 공정하지 못하다. 중재를 한다 했지만 일방적으로 호스트의 주장만을 들었을 뿐, 내 주장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전문적인 심리를 진행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에어비앤비는 “공정한 판단을 내렸다. 분쟁은 이미 닫혔고(closed) 결과는 번복될 수 없다”고 통보했다.

# 오사카 여행을 다녀온 B씨는 한 숙소에서 체크아웃 한 후 황당한 연락을 받았다. 벽에 동전만한 패임이 발생해 보증금 20만원을 포함, 벽 전체 수리비를 지불하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B씨는 “숙소 곳곳을 사진으로 남겨놨지만 사진을 찍기 힘든 벽면 구석에 있는 자국을 근거로 피해보상청구가 왔다”며 “너무 어이없어서 바로 항의했다. 호스트의 청구방식에는 분명 고의성이 보였다”고 털어놨다.

분쟁조정 참가를 통보받은 뒤 부랴부랴 영문으로 된 약관을 확인한 B씨는 “이런 식으로 돈을 징수한다면 사실상 임대 보증금은 호스트의 것이나 다름없다”며 “호스트가 조금만 마음을 먹어도 충분히 추가비용을 받아낼 수 있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 에어비앤비를 통해 프랑스 파리 자스민역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문 C씨는 체크아웃 4일 뒤 ‘세탁기가 고장났으니 650유로(약 86만원)를 변상하라’는 피해보상청구를 통보받았다. 한창 여행일정을 소화 중이던 C씨는 급작스런 분쟁조정에 대응하다가 여행계획을 망쳤다고 했다.

C씨는 “세탁기를 두 차례 사용했는데, 그 중 한 번은 호스트가 직접 작동시켰다. 세탁기엔 아무 이상이 없었고, 빨래도 잘 됐다”면서 “여행자보험에 가입해둔 터라 분쟁을 원만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지만, 이런 식의 손해비용 청구를 한 호스트의 태도에 불쾌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호스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약관, 그리고 전문성 없는 분쟁조정

쿠키뉴스의 취재에 따르면 에어비앤비는 호스트의 손해 배상 청구가 접수될 시 호스트의 의견만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절차상 양측의 소명을 받긴 하지만, 위 사례에서 보듯 숙박객의 혐의에 대한 직접증거 없이 호스트의 소명자료로만 ‘임대 보증금’에서 비용을 징수한다. ‘호스트 보호 프로그램 이용약관(Host Guarantee Terms)’이 이를 보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측 분쟁조정 전문가는 이메일 답변을 통해 “우리는 예약 당시 그 자리에 없었던 제3자에 불과하다. 우리는 단지 호스트와 손님 사이의 문서와 대화를 통해서만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A씨는 “호스트는 체크인과 체크아웃 당시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숙소에서 떠난 뒤 대뜸 커튼 갈고리 하나가 고장 난 사진을 들이밀며 커튼 전체 값을 지불하라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면서 “에어비앤비는 우리가 어떤 의견을 제시하든 이미 결론을 내린 것처럼 보였다”고 토로했다.

법무법인 서로(seolaw) 이재승 변호사는 “분쟁 해결을 위해 에어비앤비측이 조정이라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기는 하지만, 객관적인 증거 없이 당사자의 말에만 의존하는 조정이 과연 효율이 있거나 공정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물건 멸실 부분에 대한 분쟁은 입실 전후의 사진이 있다면 그 해결이 그나마 객관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에어비앤비는 이를 이용 계약이나 약관에 명시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미 다른 지역으로 갔는데…” 피해보상청구에 여행객들 ‘무방비’

쿠키뉴스에 제보한 모든 이들은 피해보상청구 이후 대처에 대해 “막막했다”고 털어놓았다. 왜 그럴까?

보통 여행계획을 짤 때에는 일 단위로 계획을 세운다. 허용된 시간 안에서 필요한 일정을 구겨 넣고, 최상의 동선을 구상한다.

때문에 여행을 떠난 상황에서 급작스레 피해보상청구가 들어온다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체크아웃 한 숙소로 돌아갈 교통편을 예약해놨을 리 만무하고, 여행 중 분쟁조정에 대응할 시간을 쪼개기도 쉽지 않다.

일본, 중국 등 가까운 나라로 여행을 갔다고 해도 여행자가 분쟁신청을 인지하게 되는 건 귀국한 뒤가 대부분이다. 다시 출국을 하지 않는 이상 해당 물품 파손의 실제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에어비앤비, 한글 번역사 없이 분쟁조정… 한글약관도 마련하지 않아

A씨는 이번 손해배상 청구 이슈와 관련해 한글을 쓸 수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한글을 쓰다가 포기했다. 배정된 에어비앤비측 중재 직원이 영어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신뢰와 안전 전문가’ 랄프 D.(Ralph D·가명)는 분쟁사실과 관련해 A씨와 대화를 하는 중 한글을 보내긴 했다. 영어본문에 구글번역기를 그대로 돌린 내용이었다.


프랑스 숙소에서 손해비용 청구를 받은 C씨는 “그 전까지 영어로 대화하던 호스트가 분쟁신청을 하고 나서부터 갑자기 불어를 쓰기 시작했다”며 “해당 내용을 번역기로 돌리고 나서야 대강의 내용을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막대한 비용을 지불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쿠키뉴스 확인 결과 에어비앤비는 한글약관을 따로 마련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임대 보증금 약관의 경우 한참 아래에서 내용을 다루고 있어, 대부분의 국내 여행객들은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피해를 입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편리와 무법의 양극단에 선 공유경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에어비앤비는 주방과 세탁기가 있고 교통이 편리한 숙소를 비교적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메리트가 있다. 같은 값에 훨씬 나은 조건의 숙소에 묵으며 때론 현지인 친구를 사귈 수도 있다. 

에어비앤비 또한 이런 점에 강조점을 두고 ‘개인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나가는 숙박 공유 플랫폼’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각종 법이나 규제로부터 책임을 회피하는 방어책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와 연계해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실제 숙박객이 부당한 피해보상청구에 대해 적절히 반박을 진행해 청구를 취소시킨다고 해도 호스트에게 사과를 받거나 에어비앤비 자체적인 패널티가 부과되지는 않는다. 호스트의 악의적인 피해보상청구가 횡행할 요건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에어비앤비의 중재가 불공정하다고 해도 이에 대응하기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이재승 변호사는 “에어비앤비의 조정이 불공정하다면 제3의 기관에 조정을 요청하거나, 기타 보증금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법적인 대응이 가능할 수 있으나, 금액이 소액이고 시간과 비용 면에서 부담이 크므로 큰 실효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여행객은 분쟁이 발생했을 시 이미 해당 숙소를 떠났기 때문에 증거를 확보하기 힘들다. 지난해 8월에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스페인 마드리드에 여행을 간 여행객이 감금당한 후 성폭행 당한 사건도 있었다. 에어비앤비가 자체적인 검수를 거치지 않은 채 그저 ‘숙박 공유’라는 미명하에 돈벌이만을 집중한다면 세계 어느 숙박시설에서 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곤 장담할 수 없다.

쿠키뉴스는 복수의 접촉을 통해 에어비앤비측 해명을 듣고자 했으나 그 어떤 반응도 얻을 수 없었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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